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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서평 174 - 니제이굽타 / 신약 단어 수업 / IVP

예예파파 2025. 3. 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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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이굽타 / 신약 단어 수업 / IVP

 

1장 의-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에서의 진실함, 정의 그리고 긍휼 마태복음

A. 의롭다는 것은 타인을 향해 무엇이 선하고 옮은지의 기준에 따라 살고 행동하는 것이다. p25

B. 예수께서 이땅에 오신 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하는 의로운 자들은 악 때문에 굶주리고 정의를 빼앗겼다. 타락에 지쳐 진리가 옳은 세상을 갈망한다. 하나님이 이사야서에 바라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고 뜻을 구하는 것은 하나다.

자신이 의로운 사람은 나라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한다. 이는 딱딱한 모습의 판사가 아니다. 사랑과 온유와 자비를 포함하는 의를 추구하는 리더의 모습이다. 이 어둡고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와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의다. 변화되며, 변화를 이뤄내는 의다. 예수님을 따르는 의는 세상의 잘못을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바로잡는다. 내 안에는 삐뚤어진 세상의 모습을 예수의 사랑과 의로 바로 잡을 용기와 의지가 있을까?

 

2장 복음 세상의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 마가복음

A. 마가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선포하고자 하는 소식은 무엇인가? 물론 이 이야기를 하는데 열여섯 장이나 필요했지만, 한 마디로 이것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다. 그분이 마가의 좋은 소식의 대상이자 본질이다. p51

B.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하고 회복하는 계획의 중심에 예수님이 있다. 복음의 시작이 예수님과 연결된다. 구약의 메시아의 특징이 예수님과 맞아떨어진다. 좋은 소식은 상태와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선한 왕이 통치하는 왕국이다. 대가가 있단다. 진리와 사랑,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파괴가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데서 온다. 그분이 그리 하셨다. 목숨을 내어놓았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이 일을 감당하셨다는 증거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은 이것을 깨달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 복음은 전 세계에 전하기 전까지 사명이다. 그래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살리고 힘을 주고 일으키는 힘이다. 이것은 현실이고 세상을 여전히 변화시킬 힘이고 사명이다. 나는 지혜로운 여인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3장 용서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풀어 주고 회복시키기 누가복음 사도행전

A. 자유는 자유롭게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경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끈다. p62

B. 제사는 회개와 후회를 표현하는 중요한 행위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사람은 죄의 굴레를 부수고, 회개하고 주께 돌아가야 한다. 용서 받았다고 심판이 끝나는게 아니다. 회개로 부르신 예수를 생각하라. 예수를 만난 용서 받은자는 용서한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자유를 얻은 사람의 특권이자, 자유의 누림이다. 감옥에서 밖으로 나오는 경험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4장 생명 건강, 성장 그리고 성취 요한복음

A. 왜 우리는 허구라 하더라도 이런 느낌들을 끄집어내는 경험들에, 참여하기로 마음먹는 것인가? 내 생각에 이것은 우리가 생명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을 단지 폐로 공기를 끌어들이고 몸에 피가 돌게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다음의 말씀을 선천적으로 믿고 있다. “목숨(Life)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12:23) p84

B.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생명을 충만하게 받는다는 개념은 어떤 것일까? 성경은 지체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고 생명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 생명도 없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이다. 불순종으로 깨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이스라엘은 점진적으로 파괴되어간다. 마른뼈 골짜기가 되어간다. 이를 하나님은 살리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살리신 이가 여호와인줄 알게 되리라 하신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사는 영생은 단순히 영원히 사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어졌다. 예수와 동행하는자, 예수 안에 거하는 자에게 그 생명이 약속되었다. 예수의 임재 안에서만 위로 받는 이유다. 나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생명을 누리고 있는가? 내영혼 평안해 고백을 하는가?

 

5장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함으로 누리는 새 생명 고린도전후서

A.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죽기는 원치 않는다." p103

B. 십자가는 대중적인 처형이었다. 6000명 이상의 노예가 십자가에 못박혔다. 공포와 두려움의 아이콘이었다. 그들의 영예와 존엄을 지웠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십자가형은 피하는 분위기였다. 이 십자가를 수치와 고통 가운데 예수가 죽었다. 고린도교회는 이 성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들은 어벤져스 같은 영웅을 바랬다. 릭워렌 같은 영웅을 따르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바울은 예수님 외에는 자랑 할 것이 없음을 밝힌다. 성도들은 식탁교제에서도 예수를 이해 못해 자신들이 드러나는 교제를 원했으나 바울은 모두가 귀히 여겨지길 바랬다. 십자가에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본받아 타인의 유익을 위해 부정적인 것을 마주하는 것. 자애로운 굴욕이라 한다. 십자가화는 사랑에 관한 전부다 방향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이 발전하여 이웃을 향한 사랑이 된다. 사랑은 내 안에 십자가 화가 일어나야 한다.

 

6장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하나 되는 것 갈라디아서와 로마서

A. ‘믿는 것’(believing)신념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의 한 형태로서 우리의 정신과 의지에서 시작하여 우리의 몸과 사회적 삶에서 표출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신뢰(trust)를 인정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런 위대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들을 신뢰한 그 순간들을 반복해서 돌아보며, 영감을 얻어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에 적용했을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신뢰와 소망으로 사는 것이다. p128

B.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믿음을 심화시키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길을 보여주신다. 예수 안에서 새롭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탁월했다. 믿음은 십자가에 못박히는 죽음으로 시작한다. 자아의 죽음, 권력과 부를 축적하는 나를 잃는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의 생명과 이름에 영원히 의존한다. 예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왕벌을 섬기는 일벌이 아니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빛과 생명을 전하는 축복과 능력을 받았다. 나는 믿습니다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관계의 문제다. 나의 옆에 그분이 함께 늘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면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모든 삶에 나를 도우시고 내가 돕기를 원하시고 행동하기 원하고 무엇보다 죽음으로 사랑하는 예수님이 내 곁에 있는 것을 빌리브 인 한다면, 나의 행동은 어찌 되어야 할까?

 

7장 은혜 하나님의 호의로 변화되며 베푸는 자로 부름받은 에베소서

A. 보노에게 은혜는 모든 방을 밝히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이 아름다운 여인과 같다. 그녀는 놀랄 만큼 관대하며 용서를 베푼다. 그녀는 사람을 대할 때 그가 어떤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고 거기에 따르지 않는다. 더 잘 대해 준다.p145

B. 은혜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대한 친절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최고조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안 계시면, 우리는 삼켜졌을 것이다. 우리의 원수에게. 예수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에 걸맞는 하나님의 행동이다. 하나님이 원래 이런 분이다. 자격 없음에도 부르시고 함께 누리게 하신다.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 이유다. 억지가 아니다. 은혜는 대가가 크다. 이 은혜를 위해 하나님은 낮아지셨다. 파산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우리는 빚졌다. 그렇기에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것이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는 시작이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깨뜨린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8장 교제 하나님 그리고 다른 이들과 삶 나누기 빌립보서

A. 우리가 교제를 함께 사는 것 곧 삶을 공유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본질이다. 그들은 이것을 교제라고 부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정의 내리는 것을 그들이 듣는다면 아 맞아요, 우리의 언약은 바로 그런 거예요'라고 말할 것이다. 언약은 상호 신뢰. 위험을 무릅쓰는 관여(risky involvement) 그리고 서로를 돌아보고 함께 삶이 엮이는 데 따르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p163

B.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이것이 교제다. 별거 아닌게 아니다. 한가지 과업이 중요함을 알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함께 힘을 나누는 것이다. 교제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나의 양을 딱 맞게 보내셨다. 서로를 생각할 여지를 주었다. 참된 교제는 서로 닿아서 더러워진다. 서로의 흔적이 남는다. 교제는 너그러움을 넘어서서 나눔적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내가 더 많이 가지게 된다는 생각이다. 일하느라 빠듯할 때 십일조와는 별개로 모아 선교지와 개척지에 몇 번을 보내드렸다. 내 맘이 채워졌나? 내 자산이 채워졌을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채우시는 분임을 확신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백수의 시간에 나를 도와주는 분들이 많다. 나의 마음을 인도하셨듯 하나님은 또 역사하시는 중이다. 교제는 결국 예수 안에 있는 내가 예수의 모습을 드리는 것이다.

 

9장 소망-하나님이 구속하신 미래에 기대는 것 데살로니가전후서

A.억압적 체제 안에 있는 더 작은 집단이 감히 권력과 싸워서 독립을 이루려면 소망이 필요하다. 그들이 이길 수 있다는 소망, 행운과 운명이 그들의 편이라는 소망, 이 과정에서 그들이 잃을 것이 승리했을 때 그들이 얻을 것보다 적을 것이라는 소망. 억압당하는 자들에게 소망은 그들이 가진 전부다.p178

대체로 이스라엘이 소망을 표현하고 고백할 때 그들은 언약의 하나님이 미래의 모든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고 모든 간구에 지금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한다. p182

B. 성경은 사람이 가지는 모든 방식의 소망을 말한다. 성경은 의외로 먼 소망을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현재적인 방식으로 소망을 고백했다. 하나님께 둔 언약적 신뢰다. 매일 이스라엘의 필요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향한 이미 있는 소망이다. 바울은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슬픔을 표현하지 말라고 했다. 죽음은 강펀치를 날리지만 하나님은 싸움에서 승리하시며 생명이 죽음을 이긴다. 성경은 죽음이라는 단어로 세상의 엄청난 압박을 표현한다. 죽음은 부활소망을 통해 패배당하고 제거되며 새생명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 우리는 이런 자유를 누리도록 태어났다. 소망은 절망에 맞선 기독교의 전쟁 무기였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거침없는 공격은 단번의 일격으로 모든 적을 신속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절망을 맞이하며 세가지 선택을 한다. 1) 헛된 소망으로 죽기 2) 절망으로 자살 3) 소망을 품고 현실을 직시하며 조언자를 신뢰하며 믿음의 근육 키우기
성경이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준다면 지금 나는 어찌 살아야 할까? 죄와 죽음, 악의 패배를 이미 알기에 어찌 살아야 할까?

 

10장 구원 번영을 위해 구조되고 화해되고 세워짐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A. 대중적인 기독교는 구원(salvation)에 대해 일차원적이고 생동감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경향이 있다. 영혼이 구름 위를 행복하게 떠다니는 이미지 같은 것 말이다. p193

B. 구약에서 구원은 지옥을 피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평화롭게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사는 것이다. 구원은 딱 한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 헬라 사람들은 보호와 복지의 종합선물세트로 여겼다.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구원을 생각 조차 없었다. 신이 가지는 관용과 은혜가 통치자에게서 내려지고 우리는 그를 임금으로 통치자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물어본다. 그 권세와 권능이 있어야 구원이란 것이 이뤄진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즉 구원 받은 자들은 그들이 번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도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본인들도 자기 성찰, 자기 훈련, 회개, 순종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구원은 시작이다. 예수의 구원을 알고 그 구원의 은혜를 누렸을 때 나의 구원은 주안에서 시작되어 성장해나간다.

 

11장 평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온전함, 선함, 조화 히브리서

A. 우리는 평화를 무언가, 곧 전쟁, 적대감, 긴장감 같은 것의 부재라고 잘못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에는 죄로 좌절한 하나님의 피조물이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온전함과 조화, 곧 우리가 형성적 평화’(formative peace)라고 부를 수 있는 더 넓은 개념이 있다. p210

그리스도인들이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사회 참여.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평화와 축복을 심는 데 헌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스도인은 스마트폰과 노트북 안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인간이다. 가장 하기 쉬운 일은 특정 사람. 이념 또는 가치에 대한 누군가의 비꼬거나 냉소적이거나 조롱하는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다. P226

B. 좋았더라고 하나님이 말씀 하신 이후 죄로 인해 평화는 깨졌다. 그럼에도 많은 선지자는 희망과 평화의 비전을 제시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주님을 찾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샬롬의 유일한 길이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는 진짜 평화일까 로마는 평화를 말했지만 대가는 노예와 계층사회였다. 반란에 대한 처형이다. 이보다 더 나은 평화를 그들은 소망했다. 예수의 죽음은 단순히 하나님을 달래는 희생이 아니다. 예수가 희생했을 때 그분 안에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 숨겨져 있었음을 마귀는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평화는 고난 속에서도 계속되는 믿음을 갖게 한다. 제자들은 성령의 축복을 받아 복음의 사명을 수행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어야 한다.

자녀들아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하나님의 대적들을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자 보다 크심이라'요일 4:4)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 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13:9)

 

12장 종교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기 야고보서

A. 구약을 읽다 보면 종교가 인간이 꾸며 낸 것이자 허드렛일 목록이라고 말한 베스키의 비판과는 상당히 일치하지 않음을 느낀다. 유대인의 경험에서 종교는 삶의 모든 영역과 연결된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관계이며, 죄로 인해 황폐해진 세상에 조화와 생명을 발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p234

B. 야고보는 특정 의식과 활동을 수행함으로 종교적인 척 하지만 이웃을 악의적으로 혹은 무례하게 대하는 위선자들을 비웃는다. 상처받은 친구에게 내가 기도해 주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종교는 자기 계발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자신을 우리안에 부어주심을 받고 그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함으로 나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진정한 종교는 타인을 돕는다. 예수님은 종말론 담화 가운데 절정의 가르침을 하늘의 왕의 배고플때를 말한다. 배고프고 춥고 병들고 외로울 때 자신을 돌본 사람들에게 축복을 베푼다 말씀하신다. 종교가 헛되고 변덕스러운 신을 달래는 것이 아님을 반증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종교는 왜곡된 것이다. 죽은 신앙이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공평함에 자극이 오는 자본주의가 우리안에 꿈틀거린다면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의 성경 적인 종교는 어디 있는가?

 

13장 거룩함 영광스러운 타자성 베드로전서

A. 우리는 거룩해지라는 부르심이 이스라엘에게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된 것 같은 특권이었다. 훈련은 혹독하고 기준은 도달 불가능할 정도로 높았지만, 분명 드물고 멋진 영광이었다. p254

B. 거절과 핍박으로 고난 받고 있다. 개인적 정체성과 사회적 안정성이 침식되어 외국인이 되었다. 우리에게 베드로는 소망 가운데 살라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마음과 생각을 두라고 촉구한다. 세상의 방식을 거부한다. 우월감에 젖어 사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본질적 비전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르게 사는 것이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매력이다.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는 아름답고 활기차고 통일된다. 고난은 도전과 성장과 변화될 기회다. 하나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 성취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룩하게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거룩이다.

 

14장 사랑 신성한 애정, 충성심, 관대함 요한1

A. ‘사랑,은 조작하는 힘. 통제. 거짓 친밀감으로 대체된다. 우리는 사랑을 거부하거나. 사랑을 자기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무절제한 열정으로 풀어놓는 경향이있다. 소망이 있는가? p271

B. 사랑을 말할 때 구약 따로가 아니다. 사랑을 얘기할 때 구약이 인용되곤 한다. 감정 갈망과 함께 사랑, 봉사, 순종의 노력과 행동이 포함되는 완전한 헌신이다. 이 내용이 반영된 요한1서는 빛 가운데 행하고 하나님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라 한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참 자녀로 행동하라 한다. 사랑이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한다. 믿음과 사랑이라는 두가지 방식으로 표현된 하나의 삶을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리액션이다. 여기에 위조된 사랑은 버려야 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하나님의 더 큰 사랑으로 힘을 얻고,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삶을 엮어가는 사람들을 상상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능하다. 성령의 매일의 임재를 받아들임으로 우리의 삶에서 믿음, 소망, 사랑이 가능하다. 원수들이 나를 괴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악을 선으로 갚는 것도 포함된다. 축복하고, 기도하고 다른 뺨을 내밀 수 있다. 예수의 뜻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함께 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살겠는가? 그 분이 먼저 걸으신 길을 보자.

 

15장 증인 예수님과 그분의 길을 옹호하는 공공의 대변자 무슨 일이 닥쳐도 요한계시록

A. 그들은 이 위대한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여러 이웃과 친구에게 이는 어리석고 심지어 악하게 보였다. 이런 종류의 진리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 곧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들과 충돌하고 거기에 반박하는 것. 이것은 위험한 증언이었다. p292

B. 증언은 목숨이 달려있다. 순교라는 단어와 이어진다. 구약은 신이 많고 신을 혼합해서 섬기는 지적을 이스라엘은 받아왔다. 목숨이 두려워 그들은 선한 것을 버렸다. 진리의 증인이 되라는 부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예수는 참된 증인으로 목숨을 잃었다. 요한계시록은 그의 증인에 관한 책이다. 증인들의 증거가 영광스럽고 효과적인 것을 알린다. 세례요한이 다른 방법이 아니라 행동으로 예수를 증거 했듯 우리는 삶으로 예수를 증언해야 한다. 도덕적 책임감으로 투명한 리더쉽인가? 모두를 위한 정의와 존중이 있는가? 그것을 위해 회개하는가? 단순한 삶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가?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가?

생명을 걸고 생명을 살리는 증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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