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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길/Re: 제로 부터 시작 하는 목회 생활 31

번역가 불러와!!!

말씀을 준비하다보면 여러 책을 읽어야 하는데, 분명 책의 저자는 유명한 분인데 글의 내용은 엉망진창인 경우가 있습니다. 글을 잘 못 썼다기 보다는 번역상의 매끄럽지 못함에 잘못된 단어 선정으로 읽는 사람이 이해 하느라 환장하는 경우입니다. 전체를 읽어보면 나쁘거나 복잡한 내용이 아닌데 같은내용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거나, 앞뒤 문맥상 이 단어가 아닌데 사용이 되었다거나, 성경에서는 쓰지도 않는 용어를 아주 친숙하게 써서 이 용어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분명 이 단어를 그대로 써서 문장을 구성했다가는 분명 잠을 주무시는 분이 많아 질 것인데..내가 그 바꿀 용어에 대해 깊은 통찰력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도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의 멱살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제법 오래 된 책..

사역을 위해 걷어 내야 하는 것( 나를 지키는 것)

사역을 하다 보면 집중하기 위해서 걷어내어야 하는 것이 참 많다. 그 와중에 많은 사역자들이 고민 하는 것은 가족이다. 나는 일단 반대인데 같은 믿음으로 뭉치고 서로 기도해주고 품어주는 가족을 버리고 사역에만 전념해야 한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것은 아직까지 내 입장에선 무리이다. 물론 가족에 너무 과하게 매여서 해야 될 것을 못하게 되는 경우라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이전에도 함 겪었던 코로나를 딸 둘이 겪게 되니까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그나마 이전에는 함께 자면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잤다면 지금은 이 아이들 만의 방이 있어서 따로 격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차이점이랄까. 그럼에도 함께 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아픈 것을 보면 맘이 아프고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

삶에 집중 한다는 것. (feat. 몰입을 한다는 것)

몸살이 났는지 어제 저녁부터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새벽에 예배를 인도하고 나서도 이게 내 몸인지 아닌지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로 몸이 뭔가 고무로 내 몸을 묶어 놓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 찝찝했다. 며칠 전 부터 체력 증진을 위해 2~3Km씩 걷고 있는데 오늘 가지 말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다. 이 기분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도 움직이자." 그리고 평소처럼 옷을 갈아 입고 운동 복장으로 길을 나섰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남들처럼 달리기는 할 수 없지만 걷는 것은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경보로 걸었다. 걷는 가운데 몰입에 관한 책을 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참 많은 것들이 내 삶을 정체 시키려고 바득바득 달려오는 구나 싶다. 오히려 이 바득 바득 ..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

성경에서는 우리의 천국을 향하여 가는 삶이 나그네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태어나고 지금까지 이사를 참 많이 다녔구나. 사는 거처를 옳긴 것을 생각하면 참 많이 돌아다녔구나 생각이 든다. 부산 구서동 -> 부산 연산동 -> 양산 통도사 -> 양산 물금 -> 부산 동래 -> 경기도 -> 부산 반송 -> 부산 연산동 -> 부산 사직 ->부산 중구 -> 부산 북구 10번 정도는 옳겼구나..아니면 기억에 없고 더 옳긴 횟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정을 붙이려고 하면 옮겨지고, 뭔가 적응하려고 하면 옮겨지고 하는 삶을 살았던 듯 하다. 덕분에 이사를 몇번 다녀서 이사에 대한 몸살이 뭔지 알고 버려지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 대충 감이 잡히고 어떤 것에 집착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배웠던 것 같다. ..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2개월 정도를 초짜로 시작하고 나서 수많은 일이 지나갔다. 일일히 지적하고 기억하기도 어렵지만 기억해 내면 머리가 아플 것 같기도 하다. 새벽에 기도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났는데 하필이면 나를 괴롭혔던 이들도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내 보낸 사람들, 호되게 야단 치던 사람들, 인격을 모독 하던 사람들, 무시하던 사람들. 지금도 이 사람들이 쉽게 용서되고 사랑으로 품게 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슨, 그들의 상황들과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호되게 했는지, 왜 그렇게 집착을 했었는지, 왜 그렇게 이기적이었는지, 왜 사람을 그렇게 무시할 수 밖에 없었는지... 삼라만상을 다 이해 하면 좋겠지만 적..

도우심이 있는 삶.

어떤 일을 논의 하기 위해 원로 목사님께 전화를 드리려고 폰을 들었는데 걸고 보니 아차...다른 교회 원로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 버렸다. 이미 받으셨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데 이 분이 최근에 내가 겪은 일로 자주 전화를 드렸었고 해서 내 번호를 저장하고 계신 것이 한수였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안부를 여쭈어 보는 가운데 이분이 뜬금없이 하시는 말씀이 토요일에 주일 준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찌 보면 초심에 대한 말씀이고 기본에 대한 말씀이라 전화드렸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대목이었다. 요즘 목회에 대해 시작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하나 행정도 계획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정말 고민이 많은데 실수라 하더라도 전화가 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닌가 싶다. ..

글로 한 주제를 표현 한다는 것

내가 주로 해야 하는 것이. 글을 쓰고 정확하게는 말할 텍스트를 글로 쓰고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하는 것인데 이제껏 '부' 라는 단어를 달고 10년 이상을 했다면 이제는 '담임'이라는 단어를 달고 그 일을 해야하니 무게가 다르다. 이전에는 대충했나? 그건 아닌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부족하고 모자라고 그렇다. 어떤 사람은 뼈대가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몇시간을 묵상을 해야 한다고 하고..목회관이 세워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도 하고. 아무리 들어도 잘 모르겠다. 그건 그들만의 얘기지 나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와 닿지 않는다. 내가 더 공부 해야 된다는 것은 알겠지만서도..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그래서 어쩌라고..해버리면 할말이 없다. 나는 한가지를 말하고 싶은데 빙 둘..

결국 내가 먼저 채워 져야 하는 것.

결국 목회라는 것이 몇년을 쌓아온 다방면의 방법 이전에 내가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고 그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성도를 나의 양으로 보고 품고 사랑하고 안아드리는 것. 그것이 사랑이기에 진솔함으로 드러나는 것. 그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래서 조용히 본당에서 무릎 꿇었다. 이게 맞다 싶었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나를 탓할 것도 아니고 내 안에 사랑을 채우는 것이 우선인듯 하다. 그리고 말씀을 전해야 겠다. 오늘 수요예배구나..

인본주의는 무엇일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 다양한 사람들 중 하나이다. 나는 목회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그렇다고 담임 목회를 하려고 준비를 해온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선교를 하기 위해 목회를 배우려고 한것인데. 정신차려 보니 목회를 하고 있었다. 어릴때 부터 받아 온 상처를 회복해 온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살피고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해 주려 한 것이 삶의 방식 중 하나이었는데 이것이 목회라는 틀에 들어가니 인본주의가 되어버렸다. 위로해주려고 하고 맘을 조금 녹인 후에 인도하려고 했던 것이 오해를 사게 되었다.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면 나도 죽어 버리고, 망하고, 내가 속하고 인도해야 하는 교회도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입장이 희안해서 각자 자신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볼 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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