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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서평 165 - 고미숙 /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북드라망

예예파파 2025. 3. 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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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북드라망

주민센터에 다녀오고 나니 기운이 빠진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데 이렇게 준비할 서류가 많단 말인가? 나만 나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별의 별생각이 드는 가운데 이 백수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바로 잡기 위해 책 한 권이 필요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코로나19에 닥친 많은 사건 중 하나인 백수라는 사회현상에 대해 다룬다. 그것도 청년 백수다. 단순히 백수가 어떻다가 아니라, 조선의 백수였던 한 당찬 남자와 콜라보를 이루는 책이다. 이 분도 백수였다. 그것도 능력자임에도 백수를 누렸던 사람이다.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 박지원은 초딩때 전집 가운데 꺼내 읽었던 열하일기의 주인공이라 늘 머리속에 인상 깊었던 사람이다. 먼나라를 떠나면서 그 시절에 일기를 썼던 이분이 대단해 보였고, 보통 인물로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 새롭게 느낀다. 연암 박지원은 백수였다.

코로나 이후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산업구조와 문명의 비전의 방향성이 달라졌다. 말도 안되지만 노동해방이 일어났다. 버스를 타고 다닐때 차창 너머로 최루탄 가스를 맡아본 사람은 안다. 이것이 노동이 존중받기 위해서 일어난 일이다. 있었다가 없어지고 있다. 노동해방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나 다름 없는 마르크스, 레닌도 당황할 일이다. 조금 개탄스런 일이지만 금수저라 불리는 분들, 귀족, 양반 같은 분들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노동에서 벗어난 집단이다. 온전히 정신활동에 매진했다. 지금까지 이런 활동이 소수에게만 허용되었다면 이 시대는 모두에게 그런 가능성이 열렸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면 백수는 열등하고 반대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탄생한 존재이다. 18세기 연암 박지원 이 사람과 연결되는 부분이 여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시다시피 그에게는 꽃길이 널려있었다. 금도 뿌려졌다. 정도때의 문장가 홍길주의 말에 의하면, 기상이 천지를 가로 지르고, 재주는 하늘을 뛰어넘고 문장은 눈 앞에 많은 것을 무너뜨릴 만하다고 표현한다. 그런 지혜로 박지원은 조정의 금수저의 실체를 보게 된다. 지금에서야 많은 미디어로 노출되어 있는 실상에 우리는 금수저를 선망은 하되 막상 눈 앞에 서면 꺼려한다. 어깨를 누르는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박지원도 그랬다. 조정에 들어가면 수많은 당파와 대립을 해야 한다. 일을 잘하면 노동이고 못하면 탐관오리가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풍류는 즐길 수가 없게 되어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이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백수에게 필요한 건 자립이다. 자립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을 재배치 한다. 노동에서 활동으로! 돈을 번 다음 부터 잘 살겠다는 건 인생을 넘기는 일이다. 바보짓이다. 잘살고 싶으면, 지금 누려야 한다. 일상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자립이다. 자기가 의식주의 기본을 꾸며야 한다. 독립을 해야 한다. 화폐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운용할까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결론 적으로 자기 삶의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 일상의 자존감을 회복 시키게 된다.

백수에겐 꿈이 필요 없다. 사는 것 자체를 꿈과 직업으로 가진다. 삶은 관계와 활동이다. 노동이 전의 일이었다면 활동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관계로 발전한다. 살며 만나며 관계를 맺어간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 자체가 삶으로 이뤄진다. 나를 둘러싼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나도 일을 마무리 하면서 더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삶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갈고 닦아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를 갈고 닦아야 한다.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살면 자본주의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 고로 정처없이 방황한다. 선택은 두가지다. 방황이냐 탈주냐. 백수는 유쾌한 노마드를 택해야 한다. 나를 덜어내는 훈련이다. 소유에서 생산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노동에서 벗어나 활동을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놀고, 먹고, 걷고, 만나는 가운데 배워야 한다. 배움이 없으면 삶은 반복에 빠진다. 우울해지고, 침묵하고, 구석으로 몰고 가게 된다. 반복에서 생성으로 가야 한다. 오늘 이 하루를 그렇게 누려야 한다.

박지원은 물질에 갇히지 않았다. 계급과 금수저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밖으로 탈주 했고, 관계가운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누렸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소통과 교감을 회복했다. 글을 썼고 자신의 공부를 했다. 허례허식이 아니라 실질 적인 성장을 위해 살았다. 가지는데 집착하지 않고 생성하고 생산하는 삶을 살았다. 그것이 백수가 되어서야 보이는 삶이다. 이 책은 백수를 옹호 하는 책이 결코 아니다. 백수라는 개념을 다시한번 보고, 어떤 존재이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여유러운 관점에서 새로이 보는 눈을 가져야 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책이었다. 조금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생산할 줄 아는 마음밭으로 성장하는 삶을 살아보자는 결심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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