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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길/과거에서 배움 11

과거에서 배움 - 짝사랑을 해보았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지금 청년이든 지긋한 어르신이든 한때 뜨겁게 또는 몰래몰래 사랑이라는 단어아래 두근거림은 다 있었을 것이다. 나도 유치원때 '문주희'라는 자매 국민학교때 '정연수'라는 자매등 이름이 기억나고 사진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 국민학교 졸업사진일 뿐이니 놀라지 마시길. 여하튼 어릴때에 그런 풋사랑을 넘어서서 누구나 한번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꿈꾸는 것이 캠퍼스 커플이 아니던가. 지금은 연애라는게 그때보다 너무 심플해지고 스피드 해지고 격해져서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자신 나름의 로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좋아해서 그쪽의 케릭터에만 관심이 있었던 나는 통 여자사람에겐 관심이 없어서 그냥 운전을 배우며 만난분에게 들은 동아리활동이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

과거에서 배움 - 공동체, 먹는건가요?

어릴 때 어머니의 과 보호속에서 자랐었다. 지금에서야 부모의 과보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 사회 이슈거리도 안되지만 내가 어릴때에는 부모님도 바쁘고 아이들도 놀거리가 없어 방황하던 시기라 1대1로 붙어서 첨삭지도를 받는 유치원생 국민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시험공부도 혼자 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검사를 받아서 달달외우거나 결과를 보여주어야 했고 시험문제에 하나 이상만 틀려도 혼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조그만 국민학교를 다녔었지만 올만점에 늘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은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학교에서 싸우거나 다치거나 일이 날때도 항상 어머니가 막아주시고 처리하고 한 것을 등뒤에서 보고 자라놓으니 그 당시엔 생각 없이 그냥 맡기면 되어서 좋았을 것 같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정말 나를 바보로 만드..

과거에서 배움 - 군대에서 도둑으로 몰려 영창 갈 뻔한 썰

대한민국 남자라면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업이든 직장이든 사회에서 인정을 해주는 분위기다. 군대를 빠지려고 하거나 뻘짓을 해서 국민들에게 들키게 되면 그 사람이 인기가 많았던 국민 XX였던 상관없이, 돌아서는 것이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보통 사람인 나도 군대에 가는 것에 딱히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단지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사실 군대를 제대하고도 예비군이니 민방위니 그런 연속의 훈련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하고 어렸던 생각에 그저 군대를 빨리 가서 빨리 끝내고 싶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도 함께 계셨기에 매번 밥을 해먹고 사먹고 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몇 개월정도를 큰집에 머물면서 군에 입대할 준비를 하는 수 밖에..

과거에서 배움 -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신학교를 갑니까?

고등학교때 그림이라는 취미에 빠져 열심히 여러가지 활동을 한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집에서는 적어도 지방대는 가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했었으나 그당시에는 인지도가 한의학밖에 없었던 동의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나마 학과는 그 당시 한참 잇슈가 되었던 멀티미디어 공학과를 들어가게 되었다. 컴퓨터나 그래픽 방송 게임쪽에 관심이 있었기에 즐거이 공부할 수 있었고 게임디자이너라는 꿈을 꾸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는 군대가기전에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던 말레이시아에 잠시 머물면서였다. 말레이시아에 머무는 동안 외지에서 오래 머물려면 비자를 잠시 갱신을 해야 될때가 오는데, 마침 그때가 되어 갱신도 할겸, 리프레쉬도 할겸 가족끼리 말레이시아 근처에 있는 싱가..

과거에서 배움 - 강변에 있는 교회 이야기

강변에 있는 교회 이야기 – 강변교회 한동안 앞선 여러가지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역지에 이력서를 넣는 것을 생각은 못했다. 그저 학교에 다니며 공부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데 함께 공부하시는 전도사님들의 여러 상황들을 보며 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사역지를 구하지 못해서 살아가는데 물질이 없어서 힘들다는 분. 좋은 사역지를 구해서 즐거이 사역하고 있다는 분, 아직도 사역지 못구하면 경험이 부족해져서 점점 사역지를 구하기 어려울 거라 권면하시는 분까지..지금 생각하면 치기어린 행동들이고 침착하지 못한 행동들이고 전도사밖에 되지 못한 이들의 한계로 아무것도 모르기에 얘기 할 수 있는 내용임이 뻔히 보이는 것이지만... 먼저간 선배들이랑 아직 친하지도 않고 사역지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그저 다른..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자녀가 바라는 것.(feat 오은영의 화해)

부모의 입장에서 불편할때가 있습니다. 자녀가 나의 잘못을 지적할때입니다. 제 직 특성상 (회개?) 바로 사과를 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그랬었니 네 마음이 그랬구나 라고 얘기해 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실제 다른 분들 많은 부모님들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이 변명이 나오거나, 윽박지르거나 부정함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외면합니다. 얼마전에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안부를 물은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뜬금없이 어머니께서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부모에게 삐딱하게 얘기하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으면서 왜 내게는 그러니?!" 자녀로서 예의를 차리는게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의를 차리지만 완벽주의에 예의에 대한 집착이 과하신 어머니께는 만족스..

과거에서 배움 - 신학교에서의 공부는 참 재미 없다.

“이런 내용으로 리포트를 하시면 됩니다.” “에이...” 신학대학원생, 당연히 말씀을 공부해야 되고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 분들도 당연히 리포트를 싫어하신다. 리포트가 나오면 그에 대응하는 다양한 유형이 몇가지가 있는데 영순위가 우리가 보통 아는 왕도의 길을 걷는 공부생의 모습 제대로 리포트 해서 제대로 내고 제대로 점수 받기. 첫 번째는 끝까지 버텨서 막날에 밤을 새어서 하는 경우, 두 번째는 공부좀 하시는 분들의 리포트를 Ctrl+c, Ctrl+v 하시는 분 세 번째는 리포트가 나오자 마자 바로 해 버리는 유형이다. 대학교에 다닐 때 이과 출신이었는지라 문과에 해당하는 신학은 정말 적응이 어려운 학문이었고 수업이었다. 공식을 줄여 요약하고 간소화 하여 표를 짜는 것은 익숙하지만 어떤 문장을 늘여서 ..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한창 경기도에서 대학원을 다닐때였습니다. 당시 애플 아이폰의 대항마로 갤럭시s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폰이 아닌 갤럭시를 택했습니다. 문제는 그녀석을 구매하고 어플리케이션 일명 '어플'을 깔면서 일어났습니다. 어떤 기기든 용량이라는 것이 있고 컴을 조금 다뤄본 사람이라면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기의 용량이 차기 시작하면 점점 느려지고 처리속도가 더디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게다가 멀티미디어 전공을 했다는 사람이 폰에다 이 어플을 깔면 어떨까 이 어플을 깔면 좋을까 하며 닥치는데로 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스마트 폰이라는 개념이 처음 있을 때이고 초기 작품이라 용량도 그리 많지 않을 터인데 저는 아무 생각없이 요즘 말로는 무지성으로 좋아 보이는 것을 깔라 제끼다 보니 폰의 ..

첫 사역지를 향한 여정

“뭐어?!” -털컥-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왜 상대방이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지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런 것이 누가 신학교에 가서 사역을 시작할 때 어찌 어찌 하라는 설명을 초짜 신학1학년생에게 해 주겠는가? 교수님? 아는 신학생? 아니면 아는 목사님, 그 어디에도 답을 구할 수 없었던 나는 생애 첫 사역지를 목표로 이력서를 내었던 교회에 실례 아닌 실례를 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 당시는 신학생으로도 사회인으로도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적어도 학교에 입학하고 장학금을 받거나 학자금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보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당시는 그런 실수가 실수인지 조차 몰랐다.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부모님의 반대로 아르바이트조차 해보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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