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내용으로 리포트를 하시면 됩니다.”
“에이...”
신학대학원생, 당연히 말씀을 공부해야 되고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 분들도 당연히 리포트를 싫어하신다. 리포트가 나오면 그에 대응하는 다양한 유형이 몇가지가 있는데
영순위가 우리가 보통 아는 왕도의 길을 걷는 공부생의 모습 제대로 리포트 해서 제대로 내고 제대로 점수 받기.
첫 번째는 끝까지 버텨서 막날에 밤을 새어서 하는 경우,
두 번째는 공부좀 하시는 분들의 리포트를 Ctrl+c, Ctrl+v 하시는 분
세 번째는 리포트가 나오자 마자 바로 해 버리는 유형이다.
대학교에 다닐 때 이과 출신이었는지라 문과에 해당하는 신학은 정말 적응이 어려운 학문이었고 수업이었다.
공식을 줄여 요약하고 간소화 하여 표를 짜는 것은 익숙하지만 어떤 문장을 늘여서 쓰는 것은 참어려운 것이었다.
그 당시, 신학대학원 리포트의 대부분이 논증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을 적으라는 것인데, 요약만 줄창 하던 공대출신의 입장으로서는 자기의 생각을 늘리고 놀려 글을 써서 페이지를 채우라는 것은 말도안되는 행동이었고 도대체 이일을 왜 해야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이 학문에 적응하기위해서 선택한 극단적인 방법은 도서관에서 사는 방법이었다.
리포트가 나오자 마자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리포트를 하루만에 끝내고 손에 집히는 책을 닥치는대로 읽기, 그것이 일상이되었고 공대생이 문과생으로 살아남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고등학교때 공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게 한이 되었고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왜 책을 깊이 있게 읽는 법을 배우지 못했냐 라는 것이 한이었다.
그러기를 2년 정도 되니 신학이라는 학문이 어느정도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분명히 하나님을 알아가는 학문인데 못알아들으니 내가 구원받은 것이 맞는가 의심도 하고 별의 별 희안한 많은 고민을 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솔직히 얘기 하자면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한 편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리포트 빌려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아서 편하기는 했는데 학교다니는 내내 열심히 했다해도 장학금 한번 받아 본적이 없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씁쓸하기도 하다.
장학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장학금 받는 신학대학원생분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밤새 공부하는 것을 밥먹듯하는 친구가 있었고, 자기의 것은 절대로 다른이에게 공유하지 않으며 다른이의 리포트는 어떻게든 뭔가 있나 싶어서 보는 유형.
어느 쪽으로든 독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목회도 잘한다고 하는데 한분은 한 교회의 개척교회 담임 목사가 되어 있고 (지금은 일본의 선교사님) 한분은 얼마전까지 부산에서 부교역자로 계셨다는데 담임목사가 되어 목회를 잘 하고 계신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그중 한분은 워낙 독불장군으로 사셨던 분이라 다른 분과의 교류가 참 어려워 특정 분들 밖에 교류가 없었기에 잘 사시는가 걱정도 된다. 나는 그 성격에 어찌 성도들과 잘지내는가 의심이 되기도하고..
장학금을 탈 수 없었던 나는 그냥 학자금을 통해 학비를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경기도 남양주에 한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으면서 식비나 차비를 포함한 5만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학자금을 갚아나가는데에 몰빵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경기도와 부산을 매주 오가며 드는 KTX비용만 하더라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어찌 그리 살았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그 당시, 청년들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쓴다는 이상한 개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용돈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학자금을 비롯해서 사례비 알바 등으로부터 고민이 많았고 앞서 일어났던 묻지마 사례비 사건도 일어난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학자금에 사례비를 다 쏟아 붓고 남은 돈으로 살아간 훈련 덕에 적은 비용 아니 없는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 의지하며 사는 방법을 터득을 한 듯하다. 사실 경기도에서 사역했던 곳이 당시에는 그리 넉넉한 곳도 아니고 담임목사님 사례도 넉넉지 못한 곳이라 오히려 그 환경덕에 없이 산다는 것에 익숙해 진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앞선 실수로 아무 사역지도 가지 못할 것 같던 나에게 그런 사역지를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 은혜인 듯하다. 그 사역지에서 3년을 사역하는 동안 다른 곳에서 배우지 못할 귀한 것들을 참 많이 배운 듯하다. 담임 목사가 된 지금도 매 절기나 명절마다 그곳의 담임목사님과 통화를 하고 자녀들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 목사님은 내가 사역할 당시에 대접을 잘 못해줘서 늘 아쉽다고 하지만 그당시 그시간에 그렇게 도와주시고 함께 하신 것이 지금의 나에겐 얼마나 큰 뿌리가 되는지 모른다. 그 얘기를 다음이야기에서 살짝 풀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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