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길/Re: 제로 부터 시작 하는 목회 생활

부 교역자 분들께, 죄송합니다. 이 세상에 '나에게' 좋은 목사님은 결코 없습니다.

예예파파 2023. 1. 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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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보면 이 글은 성도라는 입장에선 별 의미 없는 글입니다. 모든 성도에게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은 존경받는 분이고, 사랑받는 분이고 말씀이 좋고 우리 목사님!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다만, 담임 목사의 밑에서 일하게 되는 부교역자의 입장에서 '좋은 담임 목사님은 없다'라는 말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신학교를 다니면서, 내 갈길은 내가 이끌어 가야 한다는 사회 초년생의 어설픈 생각으로 서류를 낸 교회에서 연락이 와서 그쪽의 담임 목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일단 자신의 교회에서 보자는 그분의 말씀에 저는 왠지 모를 조급함에 "목사님, 교육전도사의 사례비 외에 학비도 허락해 주시나요?" 라는 말을 했습니다. 참 어리석은 질문이죠. 물론 제가 연락 받은 교회가 그런 능력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쪽과 조율도 안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그런 얘길 해줄리도 없고 우리나라 정서상 돈 문제부터 얘기하면 싫어하죠. 최근에서야 젊은분들은 그런 것이 익숙해져 있지만 제가 교육전도사를 맡게될 당시에는 택도 안되는 얘기였습니다. 당연히 전화는 끊겼고 거절 당했습니다. 

좋은담임은없다

 그때부터 였나요. 담임목사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궁금한 것이 있거나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면 질문을 하거나 물어보는 것이 나오는 성격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조용히 묵묵하게 '네, 네'만 하는 성격으로 집안에서 자라만 왔으니까요. 그렇게 6개월을 허송 세월을 보내고 경기도 남양주라는 곳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좋고 나쁘고를 따질 시간도 못되었습니다. 저도 초보였고, 저를 맡으신 담임 목사님도 초보였습니다. 좌충우돌 하면서 함께 화장실 청소도 하며 교회에 트리 장식도 겨울에 언 손 불어가며 달고 했었습니다. 신학교 다니는 동안 그 교회를 섬기다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전임 전도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담임 목사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위에 부교역자들이 보일 뿐입니다. 담임목사님은 그저 회의시간에 이거 못했다 저거 안했다 하고 지적하는 분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어떤 분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아마도 전임 전도사를 넘어 서는 순간 그러니까 사역이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할때입니다. 

 내가 일을 잘하든 못하든 사사건건 일이 걸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내가 일을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담임 목사님이 바라시는 것은 자신의 일을 돕는 것이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청년부 일을 맡으면서 부흥도 시키고 청년부 분위기도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들의 얼굴이 담임목사님께 향하지 않으면 실패한 사역입니다. 네 잘못 들으신거 아닙니다. 실패한 사역입니다. 부교역자는 철저하게 담임 목사님을 돕기 위해 들어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자신이 독립했을때 어찌 할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지 자기가 맡은 부서를 독립부대로 만들기 시작하면 저처럼 쫓겨나게 됩니다. 저는 두번이 나 쫓겨났네요. 

 아프시면 안됩니다. 저는 소뇌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역중에 아펐기에 입원한 날짜 외에는 바로 다시 사역에 투입 되었습니다. 오히려 성도님들께서 저를 많이 도와 주셨지 사역 가운데서는 일을 못하면, '저, 머리 수술해서 저리 일을 처리를 못하나?'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리 자신의 영육간의 체력을 키워두셔서 적어도 부교역자 생활때는 아픈 일을 겪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이유로 두번 쫓겨 났습니다. 

 자녀들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부모된 입장에선 누구든지 자녀는 소중합니다. 그렇기에 여러관계 가운데서 담임목사의 자녀들은 부교역자들에게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을 품어주고 기도하고 인도해 주되 필요 이상으로 건드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관심을 주지 않아서 맘 상하여 일러바치고, 관심을 너무 가져서 혼냈다고 일러바치고, 참 애매한 일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본인의 자녀들도 잘 주지를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 앞에서 교회의 누구도 비난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자녀의 버릇 없음을 말하다가 쫓겨날 뻔 했습니다. 그리고 끊임 없이 괴롭힘 당했습니다. 사모의 '가만 두지 않겠다.' 라는 분노의 찬 말까지 들었습니다. 

 교회에 가기 위해서 광고를 보면 인격적이고 좋으신 목사님이라는 단어를 쓰며 부교역자를 초빙하는 광고가 많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최근에 은퇴하신 선한XX   교회의 그분이라도 믿지 않습니다. 이전에 선교단체에 존경하던 간사님이 담임목사님으로 계신 교회에서 일해본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알겠더군요. 일상적으로 존경하던 분이 상사로 서게 되면 그분은 적이 된다는 것을. 일의 관계로 마주하게 되면 누구 하나는 엎드려야 합니다. 상사가 엎드리겠습니까? 내가 엎드리지 않으면 둘중 하나는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곳에서 나온다면 이야기가 약간 달라집니다. 인간적으로 아니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화해가 가능하고 소통이 가능합니다. 실제 여전히 교제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의 관계에서는 원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예외가 있더군요 제 여동생의 남편 되시는 분은 어느 교회에서 목숨을 걸고 담임목사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분의 성품이 어떻든 자기가 딱이는 것이 싫고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무조건 섬긴다고 합니다. 덕분에 그 친구든 밑에서 수석까지 같습니다. 결국 이쪽도 한쪽이 엎드린 경우입니다. 요즘같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에 과연 쉬울일일까 싶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평가 하기를 그래도 내가 담임이 되면 높아지지 않겠다라고 다짐 했었습니다.(사실 담임이 될 생각도 없었습니다. 개척이나 카페를 생각했었지..) 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아, 나도 내가 인정 받고 싶고, 내가 자리를 잡았다고 착각하고 있고, 내가 낸데라는 마음이 아직까지 있고, 위치를 위협받으면 으르렁 댈 줄 아는 구나 하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드디어 만났구나, 아 정말 영적 아버지 같은 분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폐쇄된 왕국의 통치자'를 만나면서 느낀 것은 아, 이 자리가 내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걷어가시면 당연히 걷어가 지는 것이 위치이고 지위이구나라는 것을 벼져리게 느꼈습니다. 

부교역자의 자리에서 어디를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최근에 분당우리교회 부교역자라는 좋은 타이틀을 내려놓고 자비량 교회를 목표로 살아가겠다 다짐한 목사님의 영상을 보며 느낀 것은 목회라는 맘은 어떤 위치나 형태든 간에 예수만 전해지면 된다는 바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기 전에 준비 되어야 될 것은 나를 철저히 낮추는 것입니다. 내가 낮아질 생각이 없이 담임 목사가 되려고 하고 담임목사와 다툴 생각이 있고, 특정 위치에 가고 싶은 분은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사업을 하십시오. 낮아지지 않으면 목사, 아니 그리스도인 조차 될 수 없습니다. 

저도 지금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기도 중입니다. 그래도 이런 글을 꾸준히 적어 나가고 싶습니다. 좋은 담임 목사님 밑에 들어갈 생각과 꿈을 갖는 것 좋습니다. 다만 더 좋은 것은 자신이 그 좋은 목사, 교역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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