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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욜의 짧은 서평 26 - 크리스 파커. 처음 만나는 기독교 세계관

예예파파 2023. 8. 9.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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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파커. 처음 만나는 기독교 세계관

이 책은 언제든지 쓰여 왔고 잘 아는 내용일수도 있지만 신앙을 교양으로 가볍게 보고 싶고 알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책입니다. 일상의 얘기 가운데서 우리가 알고 있을 가치관과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진지하게 읽어 볼만한 책입니다.

part1 개구리와 물고기

1. 우리가 헤엄치고 있는 물

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물고기에 묻지 말라고 합니다. 푹 잠겨 있기에 사실 물에 대해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문화에 푹 잠겨 있고 그 문화를 통해 형성됩니다. 그런데 확고한 이 문화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을때에 그리고 그것이 선함을 일으킬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Part2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질문

이런 생각 해본적 있나요?

- 나는 나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 나는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 나는 세상이 규정할 수 있는 것보다 큰 존재인가'?

-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 내 존재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 나는 어떤 목표점을 향해 가고 있는가? 과연 목표점이 있기는 한가?

2.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과학이 다인 것처럼 얘기합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명료한 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유물론, 다원주의, 소비주의, 영성주의, 디지털주의, 성중심주의 모두 어떤것에 치우친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관은 다릅니다. 참신하고 희망이 가득하며 목적이 분명하고 해방감을 줍니다.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수직적 정체성을 무시하고 얄팍하고 불안정한 수평적 정체성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3. 세상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이런생각, 해 본 적 있나요?

- 세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우주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 인가?

- 세계는나에게 어떤 잠재력을주는가?

- 세계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세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가 헤엄치는 물에 세계관이 있습니다. 과학지상주의, 다원주의, 개인주의, 디지털주의

이들 모두 어떤 것이 중심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성경은 세계는 계획적으로 만들어지고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초자연적 존재가 계획을 세우고 이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그속에 복잡한 구조와 열정적인 목적을 엮어 넣었습니다. 우주는 모든 복잡성과 균형 가운데 있고 이 모든 작동을 누군가 지탱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생명이 그러합니다.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우리는 사랑, 유머, 정의, 열정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좋은 것을 알았다고 해서 세상의 호기심과 재미, 창의성과 기쁨을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적 세계관은 이런 것들을 더 풍성하게 합니다.

4. 세상에는 불의가 왜 이렇게 많은가

이런 생각 , 해본 적 있나요?

- 나는 불의를 보면 어 떤 생각이 드는가?

- 창조 세계가 실제로 좋은 것이라면 세상에는 왜 그토록 많은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

- 불의가 어떻게 성경의 일부가 될 수 있는가?

- 인간의 자유는 불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 인간은 세상의 불의와 악을 해결할 수 있는가?

우리 주변에 나쁜 소식의 습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놀라운 자유를 주십니다. 신뢰와 경외로 살것인지 자기 중심의 삶을 살것인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직접 하나님으로 살 것을 결정하고 죄가 들어와 세상은 오염됩니다. 창조세계는 좋은 것이었으나 손상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한 성경 저자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7:15) 라고 말합니다. 결국 저자는 말합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세상이 잘못되었음을 말합니다.

5. 정의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이런 생각 해본적 있나요?

- 정의가 완전히 실현되는 날이 올까?

- 인간이 선의의 노력을 하는데도 불의가 그것을 오염시킬 수 있는가?

- 나는 인류 역사 전체에 흐르고 있는낙관주의를 의식하는가?

- 나는 새롭게 되고픈 갈망을 품고 있는가?

- 나는 세상에 선이 존재하지만 충분치 않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 나는 순수한 정의와 평화, 사랑이 가득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 세계를 기뻐할 수 있는가?

- 나는 그런 세계를 만들고자 일할 용기가 있는가?

앞서 얘기한 세상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이 있었습니다. 선한 창조 세계에 잠식되어 있는 모든 왜곡과 균열을 바로 잡고, 모든 깨어진 관계와 더럽혀진 인간의 노력을 구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죄와 악과 불의를 일으킨 인간이 회복되길 초점을 맞춥니다. 그것을 위해 인간이 되어 창조 세계에 하나님이 오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가 시작됩니다.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까지 그러합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 되고 그 변화가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로 흘러들어가 확장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악을 정복하는 일은 하나님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정의와 자비를 지지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불의와 삶의 큰 이슈속에서 그분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part 3.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

@ 일

- 내가 일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 일은 꼭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하는 것인가?

- 일은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는 것이상의 활동인가?

- 일이 스트레스를 주거나 지겨울 때는 어떻게 하는가?

- 내가 장차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 나는 일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 내가 무슨 일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한가, 아니면 나보다 더 큰 무언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중요한가’?

모든 일은 존엄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이 주는 큰 자유 중 하나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의 방향을 우리 자신에게서 타인에게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테크놀로지

- 나는 디지털 문화에 얼마나 스며들어 있는가’?

- 사람들과 늘 연결되어 있고 최신형 기술을 따라잡는 일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가?

- 디지털 기술이 나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었는가?

- 온라인 친구가 많으면 실생활에서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이 줄어드는가?

- 소셜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아서 불안한 적 이 있는가?

- 디지털 문화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 항상 도움이 되는가? 때로는 그 문화가 방해가 될 때도 있는가?

내가 정보를 얻지 못하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포모증후군, 소셜 네트워크와 같은 디지털 기술은 자기 중심적 행위를 더 정상적으로 인식하고 허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것을 인식하고 있는가? 이 문화에 젖어 있는 것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데 얼마나 방해가 되는가? 테크놀로지는 발명가들이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을 방식 즉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 성

- 성관계의 목적은 무엇인가?

- 성관계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풍성한 삶을 사는 데 있어 성적 인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 하는가?

- 성적인 것이 세상과 자신의 삶을 보는 렌즈가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 성이라는 좋은 선물을 오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소비

- 나는 소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내가항상유행에 뒤처진옷을 입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 새로운 물건을 쇼핑하고 구입하는 것이 행복감을 안겨 주는가?

- 물품의 소비가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면 다른 사람도 소비하게 되지는 않을까?

- 소비는 언제나 잘못된 일인가?

- 나의 생활 방식은 지구를 가볍게 밞는가. 아니면 지나치게 큰 발자국을 남기는가?

@ 진리

- 우리가 진리 이후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무언가가 진실이란 것을 아는 데 필요한 궁극적 인 권위의 출처는 무엇인가?

- 진리를 개발하는 데 과학이 얼마만큼 기여한다고 생각하는가?

- 무언가가 진실이란 것을 강하게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한 때는 언제인가?

- 어떤 것에 대해 참된 진리를아는 것이 가능한가?

- 만일 어떤 것이 나에게 진실이라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진실이어야 하는가?

- 관용 자체가 관용적이지 못할 수 있을까?

@ 행복

-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 무엇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 나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 목적과 회망은 행복 방정식에서 어디에 들어맞는가?

- 궁극적 행복은 존재하는가? 그것을 어디서 찾을수 있는가?

- 내가 행복을 높은 자리에 올려놓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 행복은 느낌 이상의 것인가?

 

Part 4. 은혜로 운행되는 인생

@ 은혜

하나님이 우리를 더 사랑하시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덜 사랑하시도록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필립 얀시 목회자이자 작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문화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제멋대로 반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초점을 맞춘 렌즈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세계의 본질에 대한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문화의 물속에서만 헤엄쳐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혜엄치고 있는 물에 대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큰 어떤 존재를 섬기고, 그 존재가 하는 일에 동참하는 기회로 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테크놀로지라는 좋은 선물을 즐기는 한편, 그것이 초래하는 한계를 분별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이라는 창조주의 좋은 선물과 선하신 설계에 감사하고 존중하는 한편, 우리의 정체성과 성취감이 섹시함이나 성적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소비를 즐기면서도 물품이 행복과 안정, 개인의 가치 의식을 선사한다고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면서도 진리가 우리의 감정과 무관하게 발견될 수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행복이 찾아올 때 그것을 즐거워하는 한편, 진정한 행복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안식할 때만 누릴 수 있음을 압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은혜 덕분에 사랑을 받고, 은혜 덕분에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고, 은혜 덕분에 남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음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나 자신과 내가 몸담은 물을 포함한 모든 것을 구속하고 계심을 알고 안심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나도 이 좋은 소식을 남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개구리 질문을 하며 이책을 마무리 해 봅니다.
-
개구리와 달리 나는 내 세계의 물에 대해, 그리고 그 물이 어떻게 내 인생관을 형성하고 있는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 물고기와 달리 나는 내 자신 밖에 진리가 있다는 것과 내가 살고 있는 문화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그런 것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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