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길/Re: 제로 부터 시작 하는 목회 생활

뻔펀한 부교역자 생활 00 - 네 자신을 알라

예예파파 2024. 12. 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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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펀한 부교역자 생활 00
신학대학원을 입학한 후에는 전도사가 되어 사역을 해야 된단다. 여기저기 떠듬떠듬 서류를 넣었고, 전화가 왔다. 자기 교회에서 면접을 보란다.
면접보는 것에 감사할 수도 있었다. 무지했던 나는 조급한 마음을 내비치는게 우선이었다. 이 동네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다. 당장 신학교에 학비를 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사례비 얘기를 꺼내었고, 날카로운 고함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겼다.

시작 부터 심상치가 않은 사역지 찾기는 6개월간 노답이었다. 교실 안에 있는 동기 전도사들은 사역얘기를 꺼낸다. 누가 어떻고, 성도가 어떻고 일이 어떻고 얘기를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 낄 수 없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당혹 스러웠는지,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 웃음이 나온다.

사역을 하다보면, 교회 안에서 어른들과 갈등이 생긴다. 동료 교역자와 마찰도 일어난다. 매번 교회에서 내어 보내지고 쫓겨난 경험을 하게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하나님께서 억까(억지로 까내리시는 것) 하시는 게 아닌가? 하나님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일해 왔는데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왜 그런 것일까? 왜 그리 조급할까? 왜 그리, 부딪칠까? 단순히 환경이 나빠서일까? 좋은 분들을 만나지 못해서일까? 하나님이 돕지 않아서일까?
결론은 간단하다. 몰라서 그렇다. 왜 사역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역지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성도와의 관계, 동역자와의 관계, 심지어 부교역자로서의 사명조차도 모른다. 사ㅁ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건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속에 어떤 어린 아이가 있는지, 왜 사람을 미워하고 믿지 못하는지, 이해 하지 못하는지, 내 말투가 어떤지, 내가 가진 가치관이 무엇인지, 내 믿음이 어떤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사역지 내의 관계가 어그러지고, 성도를 이해 못하고, 내가 속한 사람들 탓만 하게 되었다. 너무 당연한데도 그걸 깨닫지 못했다.

사회 생활만 하더라도 다녀야 하는 곳을 알아두고 간다. 일할 곳의 전문성을 가지고 들어간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파악을하고 배치를 받는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생명을 살린다는 목회자가 그런 준비를 해야 되는 것 조차 모르고 일선에 뛰어드는 것이 다반사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이제는 배워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부터 시작해야한다. 소크라테스 형님이 말했다고 알려져 있는 성전에 적혀있던 글귀를 생각해보라.
' 네 자신을 알라' 이게 모든 일에 시작이 된다. 자신을 알아야 성장이 가능하다.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당연히 쓰임받는 성장이다.

기도와 말씀으로 되지 않느냐고? 그건 기본이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뭔가 덧붙여야 되는 것처럼 얘기하면 안된다. 그만큼 우리는 기본조차 소홀히 해 왔던 것을 감추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다. 이제는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산다. 생명을 살리기 이전에 내가 먼저 살아야 살린다. 그것이 목회자 아닐까?
살리기 위해 뻔뻔해지는 자신을 단련시키는 그런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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