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80년대를 살아본 이들은 추억합니다. 뭐하나 오락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에 로봇 프라모델을 하나 놓고 문방구에서 구경하며 어쩌다가 얻은 용돈으로 구매를 하여 즐거이 조립하던 일이 있습니다. 먹거리에 관한 것도 있지만 오늘의 주제는 아닙니다. 개 중에는 완성품이란 것이 있어서 2천, 3천 , 만원까지 하는 물건이 있었죠. 그때 구하지 못한 아쉬움, 커다란 티비에서 겨우 보거나 극장에서 봤던 로봇들의 향연들의 기억. 그 기억들을 어른이 되어서 추억해봅니다.
일을 시작하고 5년차였던가 저는 문득 옛날의 그 취미를 향한 마음이 폭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태권브이니, 마징가니 완성 합금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잦은 스트레스로 인해 쌓이고 쌓였던 욕구불만이 내 속에 그리움과 시너지 효과로 폭발해 나타난 듯 합니다. 저는 저만 그리 사는 줄만 알았습니다. 나중에 카페를 알게되고 커뮤니티를 만나게 되면서 동지애를 느꼈는데 오늘 한 동지를 책으로 만나게 됩니다.
책 표지에 그려진 로봇 부터가 뭔가 용자로봇을 닮은 듯 합니다. 저자분은 다양한 회사의 채널 영상을 담당해주는 분인데 어릴때 로봇을 가지고 놀았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조금 조금씩 합체로봇의 영역을 넓히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무지하게 취미에 관한 것만 적기 보다는 자신의 어린시절과 지금의 식견을 조금씩 섞어가며 얘기를 진행해 갑니다.
그러면서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사람은 알만한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풀어나갑니다. 글을 읽어 가면서 느끼는 것은, 나도 이런 책을 내고 싶었는데 내시네, 참 대단하시네란 생각입니다. 에필로그의 저자의 글을 인용해 보면,
이렇게 수요 부족한 글들을 굳이 만들어 낸 이유는 일차적으로 나를 위해서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이 취미,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부품 몇 개 정도는 너끈히 기여한 취미에 관해 쓰면서 나의 조각들을 돌아보고 새롭게 보는 과정을 한번 정도는 거쳐 보고 싶었다. 창작자가 스스로 기반이 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건 꽤 중요한 일이다. 자기 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가장 힘이 있으니까
라고 합니다. 누구나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을 찾아 헤매다가 찾은 것 중에 하나가 장난감이고 로봇일 뿐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분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편견의 눈으로 봅니다. 그 시절을 다른 것을 누리셨거나 관심이 없게 자랐거나 이분의 에피소드 중에 운동에 특화되고 공부를 잘한 분에 속하겠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책임지고 즐겁게 해주었던 친구를 다시 찾아 보겠다는 취지가 취미로 변하고 그 취미로 또한 즐거이 살아가는데 뭐 그렇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세간에 좋지 않게 알려진 오타쿠의 이미지는 많이 개선된 편이고, 오히려 아이돌 가수를 통해 입덕했다는 얘기도 나도는 시대에 아직도 막힌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자신을 돌아볼 줄은 아는 지 궁금해 집니다.
이분의 글 중에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 끼리도 아웅다웅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판매라든지, 신 상품의 발매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그걸 이용하는 사기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기에 우아하고 품위있게 이 취미를 지켜가려고 하는 모습은 다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취미 생활을 하지만, 어른이기에 우아하게 대처할 지혜가 있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어린이의 마음과 태도로 나가는 분들이 문제의 대상이 되진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공감 갔던 에피소드가 있는데 파이어 다그온이라는 프라모델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슈퍼미니프라에서 나온 제품으로 알고 있는데 그 물건을 아내의 허락없이 구매하게 됩니다. 평소에 사던 건담 프라보다 몇만원 더 비싼 이녀석을 그렇게라도 사게된 이유는 바로 그 다그온이라는 친구가 추억소환의 로봇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친구를 몇개월 전에 예약 구매를 하고 받고 난 후 조립을 한 후에 감상이 이러합니다.
로봇으로 완성시키고 나서 한참 쳐다봤다. 물론 다른 로봇도 다 만들면 감상의 시간을 갖긴 하는데, 이건 훨씬 오래 쳐다봤다. ‘이야… 이게 참… 내가 이걸 갖네… 와…’ 하는 감상에 젖었다. 분명히 처음 만진 신상 장난감이지만, 어렸을 때 같은 모델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해 기분이 남달랐다. 어렸을 땐 장난감이 생기면 마냥 좋아서 가지고 놀았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 장난감을 손에 넣은 느낌은 조금 달랐다. 두 숟갈 정도의 감격스러움이 추가로 얹혀 있었다. 나는 정말 이 장난감을 이런 방식으로 다시 가질 수 있게 되리라곤 기대도 안 했었거든. 그간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과 가지고 싶은 걸 내 힘으로 가질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 섞였다. 보통 완성 직후엔 거의 바로 보관함에 넣곤 했는데, 이 로봇에겐 TV 옆자리를 내주고 한참을 보이는 자리에 뒀다. 이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눈으로 계속 확인하고 싶었다.
저도 그러합니다. 그 당시엔 결코 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던 아이를 다시 구하였을때 아니, 더 내 추억에 근접한 모습으로 구하게 되었을때의 그 기분때문에 이 취미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분의 에세이를 차근 차근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공감이 되었고 이렇게 다른이의 마음을 글로도 만날 수 있음에 참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실 합체 로봇이나 건프라를 만드는 추억에 관한 것,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 참 부족한 편입니다. 건프라 만들기에 관한 책은 있지만 그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룬 책은 별로 없습니다. 건프라 사진만 쭈욱 있는 백과사전 개념의 책은 있습니다만, 합체의 감동을 나누는 책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행이랄까 이분은 또 글쓰기가 취미셨습니다. 글을 쓸줄 알고 또한 취미도 이런 류를 가진 분이 많아 졌으면 합니다. 아마도 조심스레 자신의 취미를 하고 있기에 글을 쓸줄 알지만 묵묵히 자신의 취미를 감당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저도 이 책을 읽어 보았으니 도전을 해보려 합니다. (아, 이전에 한 책에 글을 올린 적은 있구나)
2021.09.25 - [Enjoy in Life/Hobby] - 우리는 장난감과 산다 - 책이 출간 되었습니다.
최근에 공부를 하며 저는 JUST Do IT을 자주 외칩니다. 일단 지르고 보자 일단 공부하고 보자 일단 해보고 생각해보자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만 남을 것 같은 일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지금은 공부 하고 싶은거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고, 시도해보고 싶은거 어떻게든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때로는 실패와 실수도 하지만 어떻습니까? 한번뿐인 인생 이렇게 살아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자의 이와 비슷한 말로 마무리를 해 봅니다.
요새 많이 쓰이는 말 중에 ‘가 보자고’를 좋아한다. 이 말엔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난관이 있을 걸 예상하면서도, 어떻게 되든 일단 하는, 일단 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믿는 긍정의 감각이 담겨 있다. 일단 가다 보면 길이 나오겠지. 언젠가는 ‘그레이트’한 결과물을 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한번 가 보는 거다.
최선을 다하며 바른 길로 가는 인생 그레이트 하게 가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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