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문장 쓰는 법. 김정선
이전에 이분의 내 문장이 그리 이상한가 를 읽어 보았는데 책의 내용이 짧으면서도 꼭 알아야 할 글쓰기의 지식을 잘 적어 표현하시는 것이 느겨진다. 일반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뭔가 붕뜬 내용이고 나중에는 깨닫겠지만 지금은 전혀 감도 안오는 얘기가 대부분인데 이 분이 쓰는 것은 실용적이고 바로 자신이 적용하여 깨닫게 하는 부분이 많다.
이분이 얘기를 시작 하는 부분에서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글쓰기는 번역이라는 점에서 참 와닿았다. 나의 생각은 흘러 넘치는데 그것이 나의 말이 되고, 나의 말이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글로 되는 과정이 아닌가. 그렇게 해야 글을 읽는 사람이 알아먹을 것이 아닌가? 실제 내 여동생이 통번역학과를 나왔는데 여러 실전에서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알아 먹기 위해 번역을 하기 위해 통역을 하기 위해 수도 없이 문법 공부를 한다. 자기가 국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국어를 알아듣게 설명하겠는가 자기가 자신의 언어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언어를 설명하겠는가? 실제로 이분의 책 내용 중에는 우리는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릴때 부터 끊임 없는 반복과 실패 가운데 배우고 있는 중이라 말을 한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글이 잘써지는 것은 아니다만, 뭔가 원리를 알아가는 것 같아서 좋기는 하다.
나는 말을 많이 해야 하서 말하는 원고를 쓸때 짧은 문장을 될 수 있으면 쓰려고 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글을 쓰는데 짧은 문장을 써야 한다는 유행이 있었나 보다. 이 저자는 그것에 대해서 그닥 좋은 평을 하지 않는다. 문장은 길게 쓰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길게 문장을 씀으로 문장의 시간과 구성에 좀더 신경을 쓰게 되고 길게 늘어쓴 문장을 나중에서야 나누게 될때 확실히 자신이 글을 제대로 썼는지 아닌지를 보게 되고 문장력도 늘어난다는 주장인데,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이전에 내가 소설을 쓰거나 끄적일때 글을 끊지 않고 계속 써왔다는 것이 생각이 나서 아하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무릎을 쳤다. 결국 이것도 훈련이라는 말이겠지. 그렇게 글을 써가면서 이제 나만의 글에서 모두가 알아 먹을 수 있는 글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거치게 된다.
그러면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예를 든든다. 우리가 보기에 앵커나 아나운서는 정말 자연스럽게 뉴스의 내용들을 말해 간다. 보는 이들은 아무생각 없이, 저정도는 말을 해야지 하면서도 나도 저 보다는 못해도 자연스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는데, 저자 말로는 막상 그 자리에 서보면 사투리에 자기 말투에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은 20%도 안될것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이유가 준비되고 다듬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결국 아나운서가 뉴스 앵커로서 서기 위해 무지 연습을 하고 준비 하는 것처럼 예를 들어 볼펜을 물고 연습을 한다던지 하는 것처럼, 우리도 글을 쓰는 것을 무지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건데, 결국 글쓰기는 인위적인것 즉, 쉽지 않다는 말로 결론을 맺는다. 저자가 참 글을 쓰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를 많이 던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사실 위로가 안된다. 어쨌든 글은 써나가야 하는 장르이니까. 자연스러운 글은 없으며 글은 인위적으로 훈련되어 적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요즘 글쓰기가 유행이 되기에는 어떤 과거가 있었을까? 실제 예전에는 글쓰기 보다는 글씨체를 많이 봤다. 시대가 바뀌고 자기의 표현을 하기 위해 글쓰기가 유행이 되었는데 현재도 유행하고 있는 AI로 인해 자기가 글쓰는 것이 희귀한 시대도 곧 올것이다.
저자는 이래 저래 글쓰기에 대해 논하면서 나만의 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으로 글을 쓰기를 권면한다. 그 중의 하나의 방법이 그 사람의 관점에서 쓰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를 바라 보던 어머니의 관점에서 글을 써보라는 것이다. 소설을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메타 인지의 영역을 글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다른 이의 관점에서 글을 쓰게 되면 적어도 내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읽는 사람의 영역에서 어찌 비취는지 훈련이 된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내 관점에서 쓰는 것과 동일한 자리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는 관점은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되면 적어도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의 관점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뭔가 신박하다.
글이 길어지기 시작할때 지시대명사와 접속부사에 대해서 신경을 쓰면서 되도록이면 쓰지 말라는 권고를 갑자기 하기 시작한다. 아니 왜 그거 없이 어찌 글을 길게 쓰라고? 그정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머리가 아프다.
글쓰기는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채워나가는 작업이다. 글안에 흐르는 시간을 말한다. 결국 같은 내용을 담은 문장이라도 독자가 읽는 시간은 달라진다는 말인데 그 안에 흐르는 시간을 잘 조절하는 것이 또한 글을 쓰는 방법이다. 그렇기에 강연한 말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강연에서는 재밌게 느껴지는 흐름이 글로 들어오면 구성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독자는 읽기 때문이다. 글을 짧게 쓰든 늘려 쓰든 독자가 읽는 마음속의 시간까지 다 고려가 되어야 한다. 구체성은 물론이고 집중해야 할 단어 선정까지 해서 이야기의 설득력을 늘려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글의 진정성이 드러나고 그런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글은 자유롭게 쓸수 있다. 글에는 나의 진정성 진솔함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글에 대한 연습을 하는데 양을 정해놓고 매일 글을 쓰는 연습이다. 지금까지 글을 길게 쓰면 좋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정해진 양 안에서 조리있게 분량을 맞추는 것도 마음의 시간을 맞추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나는 글을 쓸때 나의 언어만 생각했지 다른 사람이 나의 글을 읽는 시간 감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것을 훈련하는 방법 조차 알지 못했다. 글쓰기는 배우면 배울 수록 쉽지 않음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얼마전에 읽었던 에디톨로지에서 말하는 편집학도 이런 맥락의 철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국 글을 쓰는 것도 매일 쓰고 단련하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지금 글을 쓰고 있으며 왜 특정 소재의 글을 쓰고 있는지 끊임 없이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 사람이 자주 쓰는 실수를 조금이나마 줄여주는 꿀팁이 나온다.
의존 명사'것'을 얼마나 많이 썼는가? 조사'의'를 얼마나 많이 썼는가? '대한' 혹은 '대해'를 얼마나 썼는가
이 표현들을 한두개만 제외하고 나머지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글이 훨씬 읽기 편해질 것이다.
글쓰기에 대해서 다시금 보게 되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해 본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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