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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3

기본은 그래도 중요하다.

나는 어릴때 그러니까 초딩 이전에 주일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회를 안다닌 것은 아니고 어른들이 드리는 예배를 드렸다. 그럼에도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얌전하게 예배를 드렸다. 김정은이 예배를 드렸고 어머니와 함께 드리는 예배가 재미 없었고 그리고 교회를 등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그쪽의 일을 하고 있다. 누가 잘못했다는 문제라기 보다는 자세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국딩때는 바른생활이라는 교과서가 있었다 국어 도덕 사회를 합친 책인데 그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은 단호하다. 국어를 배우든 도덕을 배우든 사회생활을 하든 바른 생활에서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나는 그래서 그 책 제목을 참 좋아 한다. 바른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이후도 되지 않는다..

신앙을 가지고 살아 간다는 것은.

내가 아는 한 분에겐 치명 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자기의 기분을 살짝 맞춰주고 수긍해주면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줄 정도로 따른 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 모드로 변하게 되면 평소에 쿨하고 칼 같은 성격은 온데 간데 없고 가족들의 진심어린 충고는 커녕 자신을 옭아 멜지도 모를 이의 말은 그냥 듣고 따라 가는 것이다. 차라리 초등학생이나 중고등 학생이면 그러려니 이해라도 하지..나이는 성인이지..(갓 성인도 아니고...) 직장도 어엿이 있지.. 그렇다 보니 그 가족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결국 그 친구의 오빠라는 작자가 극단의 조치를 내어 버린 것이..들판을 구르도록 놓아 두는 것..먼저 일단 그 상황에 대해서 설득은 하고 언질은 주어 선택의 여지는 주되 선택을 하..

[주저리]슬픔이 묻어나는 하루

사람의 감정은 삶을 좀더 풍요롭게 한다 그러하기에 감정을 아우를 수 있는 문화가 발달 하는 것인데 오늘 따라 생각이 드는건 슬픈 마음은 하나님의 뜻안에서만 일으킬 순 없을까 라는것. ...이것 으로 허비하는 아픔을 호소하는 시간이 아까워지는건 굳이 신앙을 따지지않더라도 나 뿐일까 고인을 위한 슬픔은 당연한 것 다른이의 아픔을 위한 아픔도 당연한 것이다 다만 나자신의 괴롬으로 헛되이 보내는 정신적 피폐함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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