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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욜의 짧은 서평 18 - 박지현. 참 괜찮은 태도

예예파파 2023. 6. 14.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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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일이 고달퍼서 위로를 얻기 위해 심리학 책을 찾고 있길래 나는 제목만 보고 이책을 한번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실패 했습니다. 심리학책이라기 보다는 다큐를 맡았던 한 디렉터의 파란만장한 경험을 수필 형식으로 에세이 형식으로 적은 글이기에 아내는 자기가 찾던 책이 아니라고 덮어 버렸습니다. 저도 무안함에 알았다고 했고요. 일을 하다 보니,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느냐라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아내만 보았지 나는 읽어 보지 못했기에 이책을 무턱대고 펼쳤습니다. 참 괜찮은 태도가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느낌으로 이책을 열었고 저는 첫 펼칠때 부터 마무리 지을때 까지 눈시울이 붉어진채로 이책을 읽어야만 했습니다. 

저도 이 작가처럼 사람을 대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던 사람입니다. 말을 꺼내는 것 조차 힘들어 하고, 누가 어떤 말을 하든 그 말을 곱씹느라 그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그 말이 나를 옥죌듯하여 괴로움에 몸부림 쳤던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것의 원인은 나중에 알고 수리해 나갔지만 그것이 괴로워 사람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많은 사람을 대해야 하고 그들에게 매일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여기 근 15년을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며 그들의 인생을 다큐방식으로 부딪혀 본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만났으며 일반인이라 생각하는 이들부터 특이한 이들 아프지 않은 이들부터 아픈이들 그리고 함께 사는 이로 부터 홀로 사는 이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부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까지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다고 울고 웃고 터지고 감추고 욱하고 인생사란 인생사는 다 겪어 봅니다. 일반적으로 살아가면 결코 다 볼 수 없는 일들을 이분은 다큐라는 작품 안에서 겪게 됩니다. 왜 이 작가의 삶이 읽으면 읽을 수록 욱 하냐 하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떠난 사람들로 인해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때로는 슬픔과 때로는 아픔과 때로는 그것을 넘어선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이야기들이 그득그득합니다. 그것을 이 작가 만의 책을 읽으며 생가나는 문구들과 어우려져 참 괜찮은 내용을 만들어 갑니다. 

책 제목이 왜 괜찮은 태도가 되는지는 첫 에피소드를 읽고 나면 아하 하게 됩니다. 모든 삶의 에피소드 가운데 나는 독자는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가 그런 태도가 쌓이고 쌓이고 그들을 느끼고 아퍼하고 울고 부대끼고 하게 되면서 그들 삶을 앓게 된 사람으로 썩 괜찮은 태도가 나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지식으로도 아니고, 티비로 봤다고 되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그 삶을 누려 봤기에 그 삶에 울어봤기에 그 삶을 살아 봤기에 함께 했기에 나오는 삶의 깊이로 묻어나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진감래, 흥진비래. 그런 말 들어 봤어? 인생의 행로라는 것이 맨발로 캄캄한 밤에 가시밭길을 걷는 거야. 하지만 참아야 해, 쓰다고 해서 뱉지 말란 말이야. 써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와. 그렇게 걷다 보면 가시밭길을 넘어가. 그럼 날이 밝아 오지. 사람 인생이 그런 거야. 그러니까 내가 잘 살고 편안하다고 해서 자만하지도 말고.”
고통이 와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같이 가야 하는 당연한 것들로 너그럽게 끌어안게 된 것이다.
 쓸모가 없어 내다 버린 물건을 사람들은 흔히 쓰레기라고 한다. 하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주워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결코 쓰레기가 아니다. 부지런히 모은 만큼 무게는 더 나가게 마련이고, 그만큼 하루 벌이도 늘어난다. 이보다 더 정직한 밥벌이가 또 있을까.
살다 보면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면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소록도를 떠올린다. 지금도 소록도에는 할아버지의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테고, 그 소리와 함께 나를 위한 기도도 흐르고 있을 거라고. 그러면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누구도 탓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기도를 하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수많은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절박한 하루였고, 누군가에게는 아주 오랜만에 웃어 보는 하루였으며, 누군가에게는 고통 끝에 아이를 낳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하루였고,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에서 허락된 마지막 하루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지구라는 땅 위에서 살아갑니다. 살아가는 방식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가 그렇게 지었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장소와 시간과 마음과 가치관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는 소름끼치는 악인도 있을수 있고 뼈져리게 따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살아가는 맛이 또한 인생이고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는 가운데 계속 해서 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삶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누리고 있었구나를 느끼는 호사스러움이 될수도 있겠고,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지 못했음의 안타까움이 될수도 있겠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겹쳐져 생각나서 일수도 있겠습니다. 칸트나 니체의 깊은 철학적 얘기는 이분들은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들의 삶속에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사랑이 우리에게 흐르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 덕분에 우리는 또 살아갈 힘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고단하고 무거운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참 괜찮은 태도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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