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길/과거에서 배움

첫 사역지를 향한 여정

예예파파 2023. 1. 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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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털컥-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왜 상대방이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지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런 것이 누가 신학교에 가서 사역을 시작할 때 어찌 어찌 하라는 설명을 초짜 신학1학년생에게 해 주겠는가? 교수님? 아는 신학생? 아니면 아는 목사님, 그 어디에도 답을 구할 수 없었던 나는 생애 첫 사역지를 목표로 이력서를 내었던 교회에 실례 아닌 실례를 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 당시는 신학생으로도 사회인으로도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적어도 학교에 입학하고 장학금을 받거나 학자금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보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당시는 그런 실수가 실수인지 조차 몰랐다.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부모님의 반대로 아르바이트조차 해보지 못한 나는 군대 사진병을 겪어본 것이 사회생활이 다였다. 부산 D 대학교에 입학했고 그 당시에도 희귀했던 학과인 멀티미디어 공학과에 들어갔다. 어찌보면 본인만 잘 하면 앞길은 탄탄한 대로였다. 현재는 게임영상영화공학과로 바뀌었고 여러 가지 협업체도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꾸준히 좋은 분위기로 IT협력업체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제4차혁명이니 AI니 말이 많은 시대이니 그때에 열심히 이 과를 잘 마무리 하고 했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알고 보니 내가 다녔던 학과의 학생중에 뽀로로도 만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사회생으로도 초짜인 나는 어찌어찌 들어간 신학대학원에서 내야하는 학비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두려움이 앞섰고 신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전도사라고 불리며 일반 교회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정말 얕은 지식으로만 기독신문을 뒤져보며 구인광고 찾듯 이력서를 냈었다. 사실 그때에는 내가 속한 교회의 개념조차 몰랐었다 지금에서야 합동이니 통합이니 기장이니 들으면 알 내용이지만 그때는 완전히 신세계의 단어였으니까.

그렇게 허접하게 내었던 이력서가 어느교회에서 눈여겨 보았나 보다 그렇게 나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그곳의 담임목사님이 직접 전화가 왔었던 것 같다 나이가 지긋이 든 느낌의 목소리였다. 예의는 차려야 된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담임목사님의 개념이랑 달랐던 그때는 나의 현상황의 탈출이 더 중요했다. 서로 인사를 한 후 어디 어디 교회로 오란 얘기까지 들은 나는 다찌고짜 내 속에 말씀을 드렸다.

“저기, 목사님,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돈이 필요한데 학비는 충분히 주실 수 있는지요...”

 지금에야 대부분의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교육전도사는 적게는 학비의 50% 많게는 학비 + 차비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바리에이션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냥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직 면접도 보지 않고 그 교회에서 일하게 해준다고 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파란 신학생이 한 교회에 높으신, 담임목사님에게 하는말 치고는 참 많이 건방지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말이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분은 전화를 받은 나조차 느낄 정도의 분노를 내뿜으며 전화기를 끊어 버렸다.

 

-뚜두뚜뚜-

 

한참을 전화기를 들고 있던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알 수 없는 후회와 착찹한 감정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이후 학교는 계속해서 다녔지만 1년의 반이 지나도록 어딘가에 서류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전조사, 아무 질문도 없이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을 했던 첫 사역지 찾기는 그렇게 비참하게 실패했다. 그제서야 나는 이 길이 아니 모든 일이 철저한 준비가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이 되지 않는구나를 깨닫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온실 속에서 자랐던 ㅇㅇㅇ라는 사람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신학대학원이라는 곳을 밟고 나서야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발걸음을 옳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경험이 없이는 성장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픔일 수도 있고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실수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만 외면해서도 아닙니다. 그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 그 실수를 통해 사람속에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참 물어 볼 곳이 별로 없는 교역자의 삶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관계가 되지만, 그때는 담당 담임 목사님 조차도 밖에서 시험공부만 하던 저에겐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교역자 생활가운데 문의가 있으신 분은 공지를 읽어 보시거나  비밀 댓을 통해 알려주시면 메일 주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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