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길/과거에서 배움

과거에서 배움 - 강변에 있는 교회 이야기

예예파파 2023. 1. 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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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있는 교회 이야기 강변교회

한동안 앞선 여러가지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역지에 이력서를 넣는 것을 생각은 못했다. 그저 학교에 다니며 공부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데 함께 공부하시는 전도사님들의 여러 상황들을 보며 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사역지를 구하지 못해서 살아가는데 물질이 없어서 힘들다는 분. 좋은 사역지를 구해서 즐거이 사역하고 있다는 분, 아직도 사역지 못구하면 경험이 부족해져서 점점 사역지를 구하기 어려울 거라 권면하시는 분까지..지금 생각하면 치기어린 행동들이고 침착하지 못한 행동들이고 전도사밖에 되지 못한 이들의 한계아무것도 모르기에 얘기 할 수 있는 내용임이 뻔히 보이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전도사들의 대화

먼저간 선배들이랑 아직 친하지도 않고 사역지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그저 다른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초조해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을 잘 활용해서 자기 사역에 보태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시대였다.

폰을 쓰지 않던 시대

 처음에는 그런 일들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워낙 말도 잘하고, 말도 많은 분들의 모임이라 금방 마음이 휩쓸려버렸고, 다시금 기독 신문을 꺼내어 들고 사역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살고 있는 부산은 생각도 못하고 학교와 가까운 곳을 찾아보자고 했는데 서울쪽에 살아본 것도 아니고 수도권의 지리를 알리도 만무하고 그냥 위쪽에 있는 곳을 찾아 이력서를 넣었고 연락이 왔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곳인데 수도쪽인데도 읍, , 이렇게 들어가는 것이 뭔가 미심쩍었지만, 그런거 따질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차에 몸을 싣고 올라가게 되었다. 기차를 타도 뭔가 좀더 길게 들어가고 오래 들어가는 것 같은 생각은 단지 착각일까. 나중에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데도 한참을 들어가고 있었다. 나중에 사역을 하면서 지하철도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뭔가 낯설고 험한 느낌이 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두근두근한 심정이다.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길

떨리는 심정으로 담임목사님과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오인환 목사님. 생애 처음으로 목회자가 되기로 결정하고 사역지 가운데 만나고 면접하고 함께 일했던 목사님이다

 강변교회, 남양주 시에 있는 교회인데 여러 가지 고난을 겪고 성도님의 반이 떨어져 나간 교회였다. 원래 계시던 분도 나가시고 이 목사님도 교회로 부임하신지 6개월이 채  안된 분이셨다. 결국 담임 목사님과 나는 이 강변교회에서 여러의미에서 새로 시작하게 되는 동기생이었다. 함께 화장실 청소도 하고 함께 성탄절에 추운 옥상에 올라가서 교회에 늘어뜨릴 크리스마스 트리도 달고 함께 겨울에 기도원에 올라가 눈밭에서 함께 부르짖고 기도하기도 하고 주차장에서 철판에 고기도 구워먹고 참 많은 추억들과 소중한 경험들을 이 교회에서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교회에서 자고 다음날 일어나 사역을 해보기도 했고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며 초짜의 초짜의 티를 벗어나 보기도 했다.

 위기도 있었다. 모든 것에 초보이고 맘에 불안감이 바깥으로 표출이 된 탓인지 담임목사님의 입장에선 전도라는 입장에서 못마땅한 점도 있었다. 어느날 불러서 말씀하시길, 의사가 아무리 착하고 좋고 친절해도 병을 고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 의미 없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요는 맘만 좋고 전도하지 못하고 많은 이들을 교회로 불러오지 못할 사역자면 그만 두는 게 낫다라는 의미였을 거다. 목사님 입장에서도 시작한지 2년이 넘었는데 성도의 모임이 여전히 티가나게 늘어나지 않고 교육전도사에게 맡긴 사역이 부흥이 되지 않으니 오죽하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좋은 곳에서 교육시키고 싶은 믿음없는 엄마

 개인적으로도 교사중 한명에게 학부모중 한명에게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애를 방치시키고 싶지 않다라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심령의 상함은 극에 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 아이들 교육 잘 하고 계실까..그 아이들 예수 안에서 바로 잘 컸을까 궁금해진다. )결국 내 자신도 사역의 스트레스와 배우지 못함 치기어림으로 담임목사님과 대면하여 사역을 그만둔다고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맘만 좋은 의사로서 많은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것 통감하고 있습니다. 저도 목사님의 사역에 방해가 되고 불편함이 되고 있는 것을 스스로 느낍니다. 그래서 나가려고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당시, 담임목사님 입장에서는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나와 대면하셔서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내리신 결론은 아직 아니다. 2년 사역하고 신학대학원 마치지도 않았는데 마무리 하기에는 이르다 그냥 같이 있자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여러 가지로 부족했지만 목사님의 배려덕분에 1년을 더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나머지 1년은 내가 나의 집이 있는 곳에서 사역하고 싶어서 내려온 것이지 목사님이 보내신 건 아니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닌 일이지만 함께 하자라는 말이 나에겐 정말 크게 와 닿았다. 이후에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더더욱 목사님의 그때의 그 결정이 쉽지 않았고 흔치 않다라는 것도 깨닫게 되면서 참 감사했다.

제가 겪은 대부분의 중소교회 담임 목사님들은 조금이라도 부교역자가 맘에 안들면 내 쫓기 일수이고(몇개월도 안되어서) 용량이 다 되면 뺴어 버리는 건전지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나 뿐만 아니라 부교역자를 겪었던 분들은 다 안다. 대부분이 자기의 사역에 도움이 될 사람을 쓰려고 하지, 다음 사역을 위해 가르치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역이 중요하니까. 자신의 성도를 챙기기도 바쁜데 어찌 다른 곳의 하나님의 사역을 생각할 수 있을까. 어찌보면 합리적인 생각이다. 이후에 다른 곳에서 일어날 하나님의 사역은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신경쓰이지도 않는 것이다. 이렇게 오래하고 끝까지 하면서 가르치려는 분은 드물다. 고이고 고인 것의 결과인데 이건 담에 적어보겠다.

오목사님과는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며 안부도 전하며 명절에는 선물도 보내드린다. 그 자녀들도 주일학교때 만나서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벌써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가르쳤던 주일학교 학생이 대학졸업을 했다는 사실도 감회가 새로웠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첫 사역지에 첫 목사님 늘 감사드리며 이 글을 빌어서도 감사드린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늘 변치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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