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길/등등

그리움은 사람을 다시 부르고 싶어 한다.

예예파파 2022. 4. 17. 13:31
728x90
반응형

저는 일하는 특성상 장례식을 많이 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참 많은 것을 보게 되는데요. 그런 많은 장례식의 내용가운데서도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움이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병간호 시키느라 고생시켰던 남편이든 떠난 아내 없이 자녀를 키웠던 아버지든, 나이가 차고 잔잔히 눈을 감고 가신 어르신이든 남은 유족들에게 있는 여운은 바로 그리움이었습니다. 첨에는 속으로 놀램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저렇게 유족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도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은 기억으로만 우리에게 남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억이란 것이 반으로 쪼개거나 나누어서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기억 1로 가슴에 품고 안고 살아가게 되는데 그렇기에 슬픈 기억 좋은 기억함께 가져가는 것이기에 슬프면서도 그리운 것이라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그리움의 끝에서 떠난이들을 부르기 위한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문화적으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런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장화와 홍련 같은 그리움을 담은 이들의 찾아옴이 아닐까요 좀 무섭긴 합니다만, 또는 사고 날뻔 했는데 할머니가 도와주셨어. 또는 동화속에서 나오는 어떤 알사탕을 먹었더니 할머니와 대화가 가능하더라 얘기 같은 감동적인 얘기도 나오게 됩니다. 
   
전생이란 말도 유행하고 있죠, 이전 삶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라는 의미로 웹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쓰는 용어입니다. 윤회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비슷하게 쓰이는 단어로 회귀가 있습니다. 회귀는 전생처럼 흘러간 시간의 진행형이 아니라 돌린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즉, 동일한 시간대에 잘못 살았던 것을 다시 살아본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런 클리셰나 주제가 계속해서 쓰이는 것은 재미, 흥미유발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BTS의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기 위해 전생하고, 회귀하고, 결국 그리워 했던 이들과 사건들과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움이 모태가 되어 많은 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데 비틀어진 문화를 함 볼까요. 바로 시신이 살아 돌아온다는 개념입니다. 즉 지금까지는 영혼까지 끌어오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는 육체의 살아돌아옴 입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전쟁으로 죽어버린 시신을 한꺼번에 옳기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고인의 시신을 불태우거나 훼손하기도 그래서 도술을 이용해 움직이게 해서 시신을 그 사람의 고향까지 옳겼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옛 추억속의 강시라는 개념입니다. 시신은 일어나서 움직이지만 실제 이 안에 계신 분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새로운 개체가 된 형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요즘도 한창 유행인 또 하나의 유형이 있습니다. 
   
최근에 마블 유니버스에서도 적극 활용 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는 장르..바로 좀비물입니다.
(왓 이프에서 언급 되었었고 이제 닥터스트레인지 2에서 그 개념이 나오려고 하죠.)
원래 좀비라는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무시무시한 개념이 아니라 아이티라는 섬에서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노예를 부리기 위해 썼던 주술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영어사전에 보면 흐느적거리는 노예인, 부리기 쉬운 정도의 의미가 적혀있습니다. 좀비 이전에 무덤에서 살아돌아온 개념의 영화도 제법 있었습니다. 왜 이런 살아 돌아온다는 개념이 존재할까요?
   
미국이라는 나라자체가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믿는것을 지키기 위해 배타고 와서 만든 나라이기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의 개념이 뿌리가 깊다고 합니다. 신앙은 별개로 치더라도 그렇기에 살아 돌아온다는 개념이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렇기에 그런 미디어 문화를 거침없이 만들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이런 부활이라는 개념은 기업의 자본주의적 생각과 시청자들의 미디어적 감각에 맞물려져 문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게임에서는 아이템 적인 면에서 팀이 회복된다는 의미에서 부활, 또는 레저렉션이란 말을 씁니다. 또 끝났던 이야기가 살아 돌아왔다라는 의미로 최근에 매트릭스 레적렉션이란 제목으로도 나왔죠. 
   
결국 앞서 얘기 드렸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리움에 대한 애환도 이 부활이란 것과 맞물려 많은 매체들과 이야기들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그런 의도로 글을 쓴 것이 아닌데 제가 일이 이것 저것 있다 보니 오늘 이 글을 마무리 하게 되는 군요
   
오늘은 부활절이군요. 사람들의 그리움에 담긴 미디어의 부활이든,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사랑으로 이룬 부활이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날인듯합니다. 그 부활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으로 쿵 하고 다가왔으면 하는 작은 욕심도 있습니다.

예수 부활하신날, 오늘도 좋은날 되시기 바랍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