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강갑생] 유럽연합(EU) 내의 항공사들은 수요만 있으면 EU 내 어느 나라든 취항할 수 있다.
심지어 자기 나라는 거치지 않은 채 다른 나라 사이만을 오가며 영업할 수도 있다. 프랑스 국적항공사가 프랑스 아닌 독일과 네덜란드 사이만 오가도 되는 것이다. 물론 EU 밖의 외국 항공사들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국적기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흔치 않은 권리를 갖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미국행 승객을 태운 뒤 일본 도쿄의 나리타 공항이나 오사카의 간사이 공항에 들러 미국행 승객을 추가로 더 태울 수 있다. 한.일 항공협상에 따른 것으로 아시아권의 다른 국가들에는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넓디넓은 '하늘길'이지만 이처럼 아무 비행기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나라 항공사엔 운항이 허용되는 반면 다른 나라 항공사엔 허용되지 않기도 한다. 이유가 뭘까.
국제적으로 하늘길을 오가는 비행자유는 9단계로 제한된다. 국가 간 항공 협상에 따른 결과다.
9단계 비행 자유권 중 5단계 이후는 사실상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비행 자유권 허용 수준이 각국의 항공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흔히 항공자유의 상징처럼 불리는 '항공 자유화' 상태도 제3단계와 4단계 자유권 정도에만 해당된다. 제3단계 자유권은 자국 항공기로 자국에서 실어온 승객이나 화물을 상대국 영토에 내려놓을 수 있는 권리다. 제4 단계 자유권은 상대국 영토에서 자국으로 돌아오는 승객을 실어올 권리를 말한다.
항공자유화는 이 3, 4단계 자유권에서 운항 횟수나 취항도시 등에 대한 제한을 없앤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대표적이다.
1단계와 2단계는 영공 통과와 단순경유 등 기초적인 수준이다.
최근 일본은 한국과 항공자유화 협정을 맺으면서 우리 국적기가 미국으로 갈 때 일본 공항에 들러 미국행 승객을 추가로 태울 수 있는 권리를 허용했다. 제5단계 자유권이라는 것이다.
이 권리를 줄 경우 상대국 항공사가 자국 항공시장까지 잠식할 우려가 있어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 항공 협정에서 특히 자국의 이익을 꼼꼼히 따지며 계산기를 많이 두드리는 부분이다.
자국을 거치지 않는 제3국 간 운항 권리는 7단계 자유권으로 불리며 EU 내 항공사들에만 허용된다. EU 내에서는 8단계도 허용된다. 최종 목적지가 상대 국가의 국내선 구간을 거쳐야 할 경우 이 구간도 비행할 수 있는 권리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서로 허용하지 않는 마지막 자유권이 제9단계 자유권이다. 이는 상대국 항공사에 자기 나라 국내선을 맘대로 취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항공사가 김포~제주, 김포~부산 등 우리 국내선을 맘대로 오가며 영업하도록 허용한다는 얘기다.
하늘길은 이처럼 국가별 첨예한 이해관계에 따라 넓어지기도 좁혀지기도 한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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