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현기] 그는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총알이 심장을 관통해 피가 흘러내렸지만 오른손에는 비디오 카메라가 굳게 쥐어져 있었다. 고통스러운 듯 쓰러진 채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진압군을 피해 도망가는 시위대 모습을 찍으려 했다. 그리고 1~2초 뒤 카메라를 쥔 오른손은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눈감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는 진정한 기자였다.
27일 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 도심에서 치안부대와 시위대의 충돌 현장을 취재하다 총탄에 맞아 사망한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長井健司.50). 현장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본의 뉴스 프로덕션 APF(Asia Press Front)의 계약기자였던 나가이는 전 세계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베테랑 기자였다.
2003년에는 전쟁통의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생생한 기사를 송고했다. 2005년에는 요르단의 암만에서 동시 다발 테러 현장을 뛰어다녔다. 또 팔레스타인.아프가니스탄 등 분쟁과 전쟁의 현장에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었다. 그래서 언론계에서는 그를 '전장의 저널리스트'란 호칭으로 불렀다.
이번 미얀마 취재도 본인이 손을 들었다. 태국 방콕에서 취재를 하다 미얀마 사태가 심상치 않자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이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직접 취재하고 싶다"고 자원한 것이다. 일선 기자로는 젊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는 25일 미얀마에 들어가 현장을 누볐다.
그는 불의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도 잊지 않았다. 전쟁과 분쟁의 현장에서 직접 접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도 했다. 2003년 4월 선천성 장애로 일본에 와 수술을 받은 이라크 소년(12)이 귀국한 다음에도 소년이 필요로 하는 종이 기저귀를 현지에 조달하는 봉사활동을 벌여 왔다.
그는 사고 하루 전인 26일 일본의 민영방송국 '닛폰 TV'의 심야뉴스 시간에 전화로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전하면서 "내일(27일)은 뭔가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길한 예감대로 그는 27일 사랑했던 취재의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생전에 "왜 위험한 곳만 다니느냐"는 질문에 입버릇처럼 "누구도 안 가는 곳에는 누군가 가야 한다"고 했다. 동료 기자로서 그가 존경스럽고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