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길/과거에서 배움

과거에서 배움 - 군대에서 도둑으로 몰려 영창 갈 뻔한 썰

예예파파 2023. 1. 3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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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남자라면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업이든 직장이든 사회에서 인정을 해주는 분위기다. 군대를 빠지려고 하거나 뻘짓을 해서 국민들에게 들키게 되면 그 사람이 인기가 많았던 국민 XX였던 상관없이,  돌아서는 것이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보통 사람인 나도 군대에 가는 것에 딱히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단지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사실 군대를 제대하고도 예비군이니 민방위니 그런 연속의 훈련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하고 어렸던 생각에 그저 군대를 빨리 가서 빨리 끝내고 싶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도 함께 계셨기에 매번 밥을 해먹고 사먹고 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몇 개월정도를 큰집에 머물면서 군에 입대할 준비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빨리 입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진 듯 하다. 그리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공군에 입대한 일이다. 입대가 육군보다 빨리 들어가는 것은 좋은데, 동시간에 들어간 동기들 보다 1년은 더 늦게 군에서 나온다는 계산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이 나중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 그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군대에서 동기들과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몇 번 훈련으로 뒹군곳이 일어나서 둘러보니 구토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숙소로 돌아와도 딱히 갈아입을 옷이 없어 흙과 먼지가 가득한 옷을 품고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다. 식사도 3분안에 처리 하라길래, 그냥 국에 말아서 한번에 입안에 털어 넣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미디어도 발달하고 비리에 관한 영상물도 많은지라. 그리고 그 동네 워낙 환경이 좋아져서 그런 일이 있으면 밖에서 난리나겠지만 적어도 내가 훈련소에 있을때는 그런 일이 있었다. 몇주간 일반 훈련을 마치고 이제 특기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교관이란 분이 묵직한 물건을 덮석 손에 쥐어 주는 것이다. (사실 던졌다.) 놀래서 받아 보니 그것은 카메라였다.

교관님 이게 뭡니까?“ ”뭐긴, 이제 너는 3년간 이거 들고 일해야 돼!“

 학과가 멀티미디어 학과인데 그 과에 맞추어서 특기를 고민하다 보니 광학공학을 고르게 되었고 그것이 알고보니 육군으로 치면 정훈병, 공군에서는 사진병이라 말하는 일종의 군 내의 기자였다. 훈련이나 일정에 상관없이 일이 있으면 불려갔고 지위 계급에 상관없이 일급기밀 대외비에도 상관없이 사진을 찍으러 다녔기 때문에 크게 보면 못볼것도 못 갈곳이 없는 자유인이지만 알고 보면 어디든지 언제든지 가야하는 바쁜직이었다. 실제로 훈련때 남들은 방독면 쓰고 완전군장을 한다음에 바쁘게 뛰어 다닐 때 총 무게와 거의 맞먹는 카메라 무장(본체, 플라시보, 가방, 렌즈)까지 하고 뛰어다니며 촬영을 해야 했으니 방독면에 땀차도록 뛰어다닌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남들의 두배의 무게로 훈련 동일하게 받아봤다...

 군대라는 곳이 꽉 막혀있고 폐쇄되어 있는 곳이라 온실속 화초처럼 자란 나 같은 사람은 견디기가 무척힘들었다. 그 당시 고무신 거꾸로 신을 여자친구도 없었지만 정말 탈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 생각을 하고 마침, 다음날 촬영을 간 곳이 영창이었다. 그렇다. ..너 영창 간다 하는 그 영창 군 안에 감옥이다. 주로 관찰 병사(정신적이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관찰 보호 대상으로 있는 사병)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군내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들어가는 곳이다. 그때 기억이, '어떤 친구가 세제를 마시고 자살을 하려고 했다'고 군죄수번호를 찍으러 갔었다. 영창 실내와 그 병사를 찍으면서 든 생각은, ”, 탈영 생각 않고 열심히 군근무 해야겠다.“ 였다.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나의 맘을 적절하게 틀어주셨다. 탈영하고, 해봤자 의미가 없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선임 사진병이 늘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있었는데 그 자전거가 군 내에서 돌아다니던거라 주워왔다며 후임병인 나도 그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넓은 공군베이스에서 일을 하곤 했다. 문제는 이 자전거의 주인이 있었다는 거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워낙 낡은 자전거라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누가 멀쩡한 자전거를 낡았다고 해서 놔두고 가겠는가. 비행전대에 일하던 한 병사가  자신의 비행장교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의 모습을 목격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현행범에다 도둑질까지 한 사람으로 그 장교앞에 불려갔다. 사진병이고, 일병이라 대충 알것은 다 아는 상황이지만 역시 경험의 짬밥이란 것은 적은 편이라 겁을 잔뜩 먹은체로 나는 그분의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야, 니가 이 자전거 훔쳤지? 이실직고 해! 너, 바로 영창 집어 넣을테니까 바른대로 얘기해!“

”죄송합니다. 저는 장교님의 자전거인지도 몰랐고 저희 전대에 늘 놓여져 있고 선임도 타고 다녀서 전 타고 다녔습니다.“

”거짓말 하는거 봐라?! 니가 우리 비행대대거 훔쳐서 탄거잖아!“

”군 안에서, 물건을 훔칠 생각도 없고 저는 예수를 믿기에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이런 미친 놈..너 지금 우리 자전거가 어떤 상태인지 보고 얘기 하자 얼마나 험하게 탔는지!“

 아마, 그 장교는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 자전거는 잃어 버려 잊고는 있었는데 상태를 보고 빡쳐있었던것 같다. 그래도 이전에 자기 것이었는데 누군가의 손에 있었고 그 자전거가 손상이 간 상태로 왔으니 맘이 상하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난 억울할 뿐이다. 이등병이 뭘 알고 자기 선임이 타고 다니던 것에 의심을 가지고 따지겠는가 있으니까 탔지. 그리고 그 선임 뭐라 한 말도 없었다고!...

 그 장교를 따라 밖에 나와서 보니 놀랍게도 험하게 써서 닳고 낡았던 자전거는 삐까뻔쩍하게 변해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미묘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살짝 들었는데, 공군교회에서 봤던 한 형제가 날보고 씨익 웃어주는 것을 보았다.
내가 불려간 사이 그 대대의 신우회분들이 모여 급하게 그 자전거를 수리하고 닦았던 것이다. 자전거가 수리되어 별 할말이 없어진 장교는 노발대발 하며 자전거 누가 고쳐놨냐고 난리도 아니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드셨나보다. 결국 나는 혐의가 없어서 풀려났다. 그 사건 덕에 하나님은 나를 언제나 지키시고 계시며 또한 도우시기 위해 공동체를 쓰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모이는 자체를 그렇게나 싫어하던 나도 그 공동체를 알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PS: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나중에 보자던 그 장교분 아직도 못 보고 있다. 자전거 다시 새것 같이 득템 하셨으니, 밥이라도 한끼 사주시지..진급은 하셨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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