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길/Re: 제로 부터 시작 하는 목회 생활

최근에 부 교역자가 된 분들에게 하고픈 말..최선을 다해서 실패 많이 하시길..

예예파파 2023. 1. 2. 20:41
728x90
반응형

필라멘트 전구를 발명했던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전에 수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그 실패에 한 기자가 실패의 횟수를 언급하자 에디슨은 대답했습니다. 실패의 수가 아니라 전구를 만드는데 필요하지 않은 방법을 알아낸 가지수라고.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과정 가운데 답을 얻는 것의 귀중함을 얘기해주는 예시이며 역사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트렌드가 좀 다릅니다. 

 최근의 젊은이에 대해 글을 적은 책을 몇권 보았습니다. 모두 유명한 책들인데요. 거기서 공통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입니다. 실패의 두려움, 쓸데없는 것을 할 것 같은 두려움, 막힌다는 것의 두려움입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영화는 컨텐츠로서 빨리보기의 대상이 됩니다. 컨텐츠의 내용을 대충이라도 알아야 소통이 가능하거든요, 직장은 교류의 장이 아니라 자신이 한걸음더 나아가기 위한 편한 자신의 직을 얻기 위한 발판입니다. 그렇기에 상사에게 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과 식사할 필요도 회식에 참여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건을 비싸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꼭 필요한 것만 덜어서 사면 되는 시대이니까요. 그러나 내가 정말 필요하고 갖고 싶은 것은 그동안 아껴온 돈으로 플렉스를 합니다. 나이 기쁨은 소중하니까요. 그들이 태어난 상황이나 자라난 상황은 각자 다를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예전에 저 처럼 자랐을 것이라고 얘기 하더군요. 온실속의 화초로 귀하게 자랐습니다. 그렇기에 조그마한 변화, 격정, 단죄에도 그들의 부모가 가만히 있지 않죠. 자신이 스스로 일어서는 것 보다는 보호를 통해 자라났기에 자신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보호하는 스킬은 자기는 모르지만 부족하게 살아가죠. 그래서 물어봅니다. 쉽게 가려합니다. 예를 들면 라이트노블이나 애니의 제목이 과하게 아주 길어진 것과 같습니다. 설명이 없는 것은 꺼려지는 것이죠. 내가 전생하여 슬라임이 된 건에 대하여라는 긴 제목으로 '아 이 작품에는 슬라임이 나오고 사람이 전생해서 슬라임이 된 이야기 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얘기 하자면, 이세계 물이나 회귀물 전생물에서는 주인공이 대부분 먼치킨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난을 겪거나 힘든 모습, 지친 모습을 보이면 보는 그들은 피곤함을 느낍니다.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꺼려지고 있습니다. 

다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도 만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빅데이터를 통해서 글이 나왔다는 것은 가짜뉴스마냥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 입니다. 적어도 세상은 이들의 성향에 맞게 돈을 벌기 위해 변화 하고 있는 것이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거짓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와중에도 목회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왜 이길을 오셨는지 참 궁금해 지지만(아..주님께 한소리 듣겠는데..) 지금이라도 도망치시..(아..죄송합니다...주님..) 적어도 대부분의 최근 분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 가운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오셨다면 교수님이 되시거나 좋은 책을 내는 편찬 위원이 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신앙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빼게 되면, 이 동내는 번쩍이는 아이디어나 경제적 자유를 얻게되는 인사이트 만으로는 살기가 빡센 동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에디슨 예화 같은 일이 비일비제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길을 걸으시겠다면 모든 실패에 일일히 반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잘못된 것에 사과는 해야 하는데 그것에 일일히 좌절하고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모든 일에 부딪치시길 바랍니다. 심지어, 자기가 섬길 담임 목사님께도 깨지더라도 여쭤볼건 여쭤봐야 합니다. 눈치없다. 일머리 없다 소리는 지금 들어도 상관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고 10년 경력이라도 배워야 할 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물어보십시오. 깨지는 것도 최선을 다해 깨지십시오. 그래야 왜 깨졌는지 분석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고쳐갈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설렁설렁 간다면(그럴 수도 있지 맘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 그 일을 다시 겪게 됩니다. 

 후에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릅니다. 정말 교수님이 될지 출판쪽으로 갈지 책을 쓰게 될지 개척을 하게 될지, 선교사님이 될지 , 단독목회를 하게 될지 그 사람의 길은 주께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 단계에 이르렀을때에야 지금까지 깨져가며 최선을 다해 뭔가를 얻고 배우려고 하던 것들이 쓰레기가 아니라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다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지금도 후회가 되는 것이 부교역자때 더 배울 걸...보다 더 한참 어릴때에 중고등학교때에 공부하는 방법을 더 빨리 알았다면, 사회에 적응을 더 잘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배우는 것들이 필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수학을 통해 음악과 예능을 깨닫게 됩니다. 사회를 통해 정치를 깨닫게 됩니다. 역사를 통해 현상황을 깨닫게 됩니다. 실과를 통해 경제를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뭔가를 배워보려고 애만 쓰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은 제 후회를 담은 글이기에 누가 읽을지도 알 수 없는 글이 되어 버렸지만 적어도 읽게 되는 젊은 목회자 분이 계시다면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 앞에 충성되게 나간다고 하면서 주어진 내 삶에 충성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어떤 시인이 얘기 한 것처럼 연탄불처럼 뜨겁게 자신을 태워본적이 있는가?

23년을 맞이해서 새로운 맘을 다지기 위해 저에게도 말해 봅니다. 모에루다로~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