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교회 내 원로목사 제도는 평생 헌신한 목회자에 대한 예우와 존경의 표현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가 리더십의 갈등이나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성경과 신학적 원리에 비추어 은퇴 지도자의 위치와 권위 이양의 본질을 세 가지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1. 성경적 전례: 레위인의 은퇴와 모세의 승계
성경에서 직무의 은퇴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대표적인 사례는 민수기의 레위인 규례이다.
민수기 8장 24절에서 26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회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에게 50세가 되면 그 직무를 쉬고 다시는 일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 다만 "그의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돕는 직무를 지키고 일은 맡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성경적 은퇴가 사역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책임의 전수'와 '역할의 변화'임을 시사한다. 은퇴자는 '치리하는 자(Ruler)'가 아니라 후임 세대를 뒷받침하는 '돕는 자(Helper)'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또한 신명기 34장에서 모세는 임종 전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완전히 이양하였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묘실을 사람이 찾지 못하게 하신 것은 사후에도 모세의 상징적 권위가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사역을 가리거나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하신 신학적 조치로 해석된다. 이는 지도자의 퇴장이 철저히 공동체의 미래와 하나님의 통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2. 신학적 구분: '명예(Honor)'와 '권세(Authority)'의 차이
신약성경은 연장자와 지도자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지만, 이를 조직적인 치리권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디모데전서 5장 17절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Timē)할 자로 알되"라고 명시한다. 여기서 '디메(Timē)'는 인격적인 예우와 경제적 보상을 포함하는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교회를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다스리는 실제적 권세인 '엑수시아(Exousia)'는 현재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담임목사에게 위임된 것이다.
은퇴한 지도자가 실질적인 치리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교회론적 단일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 한 몸에 두 머리가 존재할 수 없듯이, 한 교회 내에 두 개의 실질적 권위가 공존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기형적인 구조를 형성하며 공동체의 혼란을 야기한다.
3. 교회사적 반성: '상왕(上王)' 정치가 아닌 '영적 어른'의 자리
개혁주의 신학에서 목사의 직분은 계급이나 신분이 아니라 사역적 '기능(Function)'에 근거한다. 따라서 직무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기능과 결부된 모든 권한 또한 함께 내려놓음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였다. 은퇴자가 후임자의 목양 영역을 간섭하거나 성도들 사이에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여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성경이 명하는 화평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요한삼서 1장 9절에 등장하는 '디오드레베'는 교회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며 사도들을 비방하고 성도들을 내쫓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직분을 권력화하고 자기 지위를 유지하려 할 때 나타나는 영적 타락의 전형을 보여준다. 참된 지도자는 베드로전서 5장 3절의 권면처럼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약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결론: 아름다운 퇴장이 공동체를 살린다
신학적 관점에서 원로목사 제도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목적이 마땅한 '존경'에서 '지배'와 '영향력 행사'로 변질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지도자의 참된 마지막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공동체 위에 높여지게 하는 것이다.
후임자가 하나님이 맡기신 양 떼를 마음껏 돌볼 수 있도록 영적인 공간을 마련해주고, 자신은 기도의 자리로 물러나는 '레위인적 은퇴'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람의 공로가 기념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세대를 이어 신실하게 흐르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비로소 교회는 건강한 세대교체를 이루고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내가 믿는 길 > 믿음의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Day 27. 보시는 하나님 – 광야의 끝에서도 나를 아시는 분 (0) | 2025.10.28 |
|---|---|
| Day 26. 언약의 불 – 언약은 하나님의 신실한 불로 세워진다 (0) | 2025.10.26 |
| Day 25. 별의 약속 – 믿음은 별빛처럼 어둠을 뚫는다 (0) | 2025.10.24 |
| Day 24. 감사의 잔 – 승리의 끝은 예배다 (0) | 2025.10.22 |
| Day 23. 구원의 길 – 믿음은 물러서지 않는다 (0) | 2025.10.20 |